▲ ㈔대한간호조무사협회와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13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2017년 간호조무사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은영 기자
A(48)씨는 10년차 간호조무사다. 종합병원에서 7년, 일반의원에서 3년째 일하고 있다. 3년 전 이직할 때 원장은 A씨의 종합병원 경력은 원했지만 경력에 상응하는 대가 지불은 거부했다. 원장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간호조무사의 노동력을 저임금에 쓰려는 한국 의료계의 관행 탓이다. A씨는 “경력 5년차부터는 5년이건 20년이건 많이 받아야 월 130만원에서 150만원 수준”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가 올해 7월 간호조무사 8천664명을 대상으로 임금·노동조건을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2017년 간호조무사의 평균 현실을 정리하면 이렇다. 41.2세의 경력 10년차 여성 간호조무사가 요양병원이나 일반의원에서 주 44시간 일하고 받는 임금은 월 150만원. 의료기관 특성상 공휴일에도 일한다. 지난 1년간 6일밖에 못 쉬었다.

법정 최저 휴가일수에 턱없이 모자라

A씨 상황은 평균 간호조무사의 노동조건보다 열악하다. A씨는 평일과 토요일을 포함해 주 51시간 일한다. 평일에는 그나마 1시간의 점심시간이라도 있지만 토요일에는 그마저 없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연속 근무다. 월차나 연차는 남의 일이다. 연차수당은 구경조차 못했다.

A씨는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2017년 간호조무사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비 7만원을 들여 대체인력을 고용했다. 이날 토론회는 협회와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주최했다.

협회는 2017년 간호조무사 임금·노동조건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응답자 구성을 보면 여성이 98.1%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남성은 1.9%에 그쳤다. 40대가 39.5%로 가장 많았고 30대(23.9%)·50대(20.2%)·20대(15.7%)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33.8%가 A씨와 같은 일반의원에서 일했다. 요양병원(25.6%)·일반병원(13.1%)·종합병원(9.3%) 순이었다.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좋지 않은 일반의원과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비율이 60% 정도다. 23.9%는 상시 근로자 4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A씨가 일하는 의원에는 의사 1명과 간호조무사 2명이 있다.

A씨는 “기껏해야 한두 명 일하는 의원에서는 휴가라는 것 자체가 없다”며 “병원장이 여름휴가나 해외연수를 가면 그게 곧 휴가”라고 설명했다. 실태조사 결과 간호조무사들은 지난해 평균 6.2일의 휴가를 썼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저 휴가일수인 15일에 턱없이 모자란다. 일반의원 간호조무사는 이마저도 보장받지 못했다. 지난해 일반의원 간호조무사의 평균 휴가일수는 5.1일로 조사됐다.

“정규직 아닌 정규직, 특별근로감독 필요”

간호조무사의 경력기간은 10년 이상(32.5%)·5~10년(31.7%)·3~5년(19.6%) 순이었다. 5년 이상 경력자가 64.2%나 된다. 10년 이상 경력자도 전체 응답자의 3분의 1에 달한다. 숙련인력 비중이 높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간호조무사들은 경력이나 근속에 따른 승진기회가 없다고 토로한다. “간호조무사만 승진제도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57.3%로 “전 직원 승진제도가 없다”고 답한 비율(20.6%)까지 합치면 77.9%가 승진기회조차 없다.

최저임금 이하 임금도 문제다. 간호조무사의 13.8%가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최저임금을 받는다”고 답한 비율은 32.8%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노동자 비율은 7.3%에서 13.6% 사이다. 정부 공식 통계보다 더 많은 간호조무사가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고 일하는 셈이다. 간호조무사의 50.2%는 휴일수당도 받지 못한다.

그나마 노조가 있는 곳은 상황이 좀 낫다. 간호조무사의 90.3%는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일한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노조가 없는 사업장과 비교해 휴가일수는 3.6일, 임금총액은 860만원 많다. 최저임금 미만 지급률도 노조가 설립된 곳은 7.1%인 데 반해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14.6%로 높았다.

홍정민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상상)는 “간호조무사의 81.2%가 정규직인데 노동조건을 보면 과연 정규직 노동자인지 의문이 든다”며 “정규직이라면 고용안정성과 함께 임금·노동조건이 수반돼야 하지만 간호조무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노동현장에 대한 철저한 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훈 한국공인노무사회 대외협력이사는 “실태조사에 따르면 의료서비스업이라는 전문업종에 맞지 않게 노동관계법령에 대한 몰이해를 보이고 있다”며 “기초고용질서 위반이 심각한 의원급 의료기관과 요양병원에 대한 지속적인 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도 근로감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나 실장은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63번 과제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제시했다”며 “고용노동부가 간호조무사를 노동권 취약근로자로 분류하고 법이 정한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위반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특별근로감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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