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형동 우정노조 대외교섭국장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 건강의 적이다. 야간 노동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2급 발암물질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노동시간이 길다. 일하다 쓰러지고 죽는 과로사회다. 과로사회 밑바닥에는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 특례업종이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특례업종을 26개에서 10개로 줄이고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지만 속도는 게걸음이다. 한국노총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우정·자동차·의료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해 왔다.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두렵다.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사람 취급 안 하네. 가족들 미안해."

동고동락했던 동료가 유서를 쓰고 쓸쓸한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 그 동료는 다름 아닌 우체국에 15년간 몸담았던 집배원이다. 그렇게 우리는 올해만 집배원 12명을 포함해 23명의 우정노동자를 떠나보냈다. 왜 유독 정부기관인 우정사업본부에서 죽음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걸까. 우정사업본부는 ‘2016년 시민이 뽑은 지난 10년간 최악의 노동자 살인기업’ 2위와 ‘산재 통계상 지난 10년간 최악의 살인기업’ 4위로 뽑혔다. 올해는 살인기업 ‘특별상’에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우체국 집배원은 국민을 위한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우정사업본부에서 물증 없는 푸대접을 받아 왔다. 이번 서광주우체국 집배원의 유서가 이를 대신한 것 같다.

우정노조가 7월24일 주최한 ‘집배원 과로사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우정사업본부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삶이 일부 공개됐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박사의 ‘집배원 과로사 근절대책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집배원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1~13시간이지만 휴식은 15분에 불과했다. 월평균 법정근로시간 외에도 평균 57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하고 있지만 집배원들의 연차휴가 사용일수는 평균 3.4일로 나타났다. 매년 4.4회 업무 중 사고를 겪는데도 80%가 병가조차 쓰지 않았다. 내가 쉬면 동료 집배원이 많은 업무를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 내 일을 완수하려면 집배원은 쉴 틈 없이 뛰어다녀야 한다. 여름엔 폭염과 폭우 및 안전모 무게, 겨울은 폭설과 한파 및 빙판길로 인해 불안한 이륜자동차 장거리 운행은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불규칙적 식사로 인한 위장병은 집배원에게 예삿일이 된 지 오래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정부의 최우선 가치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며 그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될 수 없다"며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사업장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대형 인명사고의 경우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때까지 사고원인을 투명하고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과로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산업재해로 인정한다. 산재보험법에서도 사망자 1명 이상 발생하는 중대재해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따라 감독 대상 사업장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관리자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정사업본부는 장시간 중노동 실태를 교묘히 은폐하고 있으며, 대민서비스가 주요 업무인 정부기관임에도 집배원·계리원 등 우정직군 인력충원과 증원에 인색하면서 행정직군 직급 조정(상위계급)은 꾸준히 추진해 왔다.

6월15일부터 우정노조는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전 조합원의 단결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우정사업본부의 기형적인 인원구조를 바로잡고자 정부가 직접 나섰다. 우정노조와 사측·전문가위원 6인 등 10명으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 추진단’이 구성돼 운영되는 만큼 집배원의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에 온 힘을 쏟아야 할 때다. 지난달 23일 ‘과로사 근절 및 장시간 노동 철폐 촉구 대책위원회’를 출범한 한국노총에 거는 기대가 크다. 상급단체의 리더로서 분명한 역할을 해 주리라 믿는다. 더 이상 무고한 죽음이 없도록 ‘국민의 다정한 이웃’인 집배원이 죽음의 일터가 아닌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는 제도개선이 시급하다. 집배원도 가장으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더 이상 우리 곁을 떠나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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