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난 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민주노조운동 30주년 기념 토론회’가 있었다. 토론회 제목은 '87 노동자대투쟁 30년, 노동세계의 변화와 민주노조운동의 미래'였다. 필자는 토론회 2부에서 ‘민주노조운동의 관점에서 본 민주노총의 성과와 과제’를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매일노동뉴스>는 “민주노총, 전태일·전노협 정신 잃어” “1세대 활동가들 ‘변혁성·연대성’ 회복 주문 … ‘자본주의에 맞서 저항해야’”로 큰 제목을 뽑고, “민주노총에 인간해방·노동해방 구호 사라져”라고 소제목을 뽑았다. 그리고 이렇게 보도했다.

“2부 첫 발제자로 나선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는 ‘전태일은 자본주의 질서와 그 원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상, 즉 프롤레타리아 휴머니즘인 인간해방 사상에 입각해 자본주의 사회구조에 맞서 투쟁하다 산화했다’며 ‘지금 민주노총은 인간해방이라는 구호는 물론이고 전노협 시대에 가장 널리 외쳤던 노동해방이라는 구호조차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급적 자주성과 변혁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 민주노조운동의 공동체적인 성격과 전투성·연대성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조합주의·기업별노조·경제적 노조운동을 극복하고 계급적 노조운동·산별노조운동·정치적 노조운동을 할 수 있도록 민주노총의 정체성을 크게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기사는 필자의 발제를 잘 요약했다. 다만 그 발제에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부분과 미처 언급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칼럼을 빌려 보충하고자 한다.

하나. 기업별노조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조합주의 노조운동이나 경제적 노조운동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흔히 노동조합은 조합원 권익신장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단체이며, 그 권익 가운데는 경제적인 권익이 가장 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규정들은 어디까지나 노동조합운동에 관한 자본(가)계급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노동조합은 소속 조합원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활동하기도 하지만 조합원을 넘어 자신이 대표하려고 하는 계급대중의 권익향상을 위해서도 활동한다. 총연합단체는 노동자계급 전체를, 산별노조는 자기가 관할하는 산업의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고 대변한다. 단위사업장 노조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다면 그 노조는 노동운동단체가 아니라 조합비를 받고 그 반대급부로 이러저런 이익을 챙겨 주는 이익단체에 지나지 않게 된다.

참고로 모란공원 전태일 동지 묘소에 가면 작은 비석이 하나 서 있다. 거기에는 “3백만 근로자 대표 전태일”이라고 적혀 있다. 청계피복노조 외에 민주노조 하나 없던 1970년대 초에 사람들은 전태일을 단지 평화시장 봉제노동자만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운동가였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둘. 경제주의 노조운동에 대한 문제인데, 노동조합에게 경제적 의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향상이 노조운동의 유일한 또는 최고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정치적 지위향상이나 노동자권력 쟁취 및 정치체제 변혁과 같은 정치적 역할을 노동조합의 고유한 기능이 아니라고 잘못 생각하는 점이다. 이 또한 자본계급의 이데올로기다. 이 지점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민주노조들이 싹쓸이된 이후 70년대 경제적 민주노조운동을 반성하면서 다소 극복됐다.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이 공제활동이나 경제활동과 더불어 민주노조운동의 필수적인 한 역할이라는 것, 나아가 노동조합의 이런 정치활동은 경제적 지위향상을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만 인식해서도 안 된다는 것, 파쇼통치하의 노동운동은 반파쇼 민주화 투쟁을 자신의 사회적 임무로 생각하고 스스로 반파쇼 민주화운동의 일익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성찰이 실천으로 가시화된 것이 전노협의 민주노조운동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하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향상보다 민족해방을 우선시했으며, 민족해방운동의 한 주역으로 역할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노동계급에게는 반파쇼 민주변혁과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과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사회적·역사적 책무로 주어져 있다.

셋. 우리나라 현실에 비춰 볼 때 노동자 정치투쟁의 첫걸음은 노동악법 개정투쟁이다. 자본과 국가가 노동악법으로 민주노조운동에 수많은 족쇄를 채워 놓고 있기 때문에 이 족쇄들을 분쇄하지 않고는 힘 있게 노동운동을 전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이 대대적으로 정치투쟁에 나선 첫걸음도 88년 11월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노동악법 개정 전국노동자대회’에서였다. 노동악법 개정투쟁은 제도개선 투쟁이면서, 단순한 제도개선 투쟁을 넘어 파쇼통치를 거부하는 반파쇼 민주화 투쟁이었다. “구속 전두환, 퇴진 노태우” “해체 전경련, 타도 민정당” “악법철폐, 노동해방” “노동운동 탄압하는 군부독재 끝장내자” 등이 주요 슬로건이었다.

이런 반파쇼 민주화투쟁과 노동악법 철폐투쟁이 민주노총 시대에 와서 실종됐다. 노동악법이 사라졌는가, 파쇼체제가 청산됐는가? 독점재벌과 파쇼국가가 하나로 유착해 노동계급에게 테러독재를 하는 나라에서, 그리고 노동악법이 산별노조도 정치투쟁도 못하게 봉쇄하고 있는 조건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은 그런 악법에도 불구하고 단체협약으로 해결하면 된다며 근로기준법 개악(2003년)도, 비정규직 보호법 제·개정(2006년)도, 산업교섭을 불허하고 교섭창구를 단일화한 추미애 당시 국회 환노위원장에 의한 노동악법 날치기(2009년)도 대충 넘어갔다. 얼떨결에 내준 정리해고제(98년)와 근로자파견제(98년)를 폐지하고, 그때부터 확산된 손해배상·가압류제를 폐지하는 투쟁도 하지 않았다. 정치파업의 자유를 위한 투쟁도 없었다.

촛불혁명으로 신자유주의 파시즘 정권을 타도한 지금이야말로 이런 노동악법 철폐·개정투쟁을 대대적으로 벌일 때다. 이를 통해 집단적 노사관계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더불어 헬조선 체제를 변혁하는 정치투쟁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사관계 제도개선을 이루자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겠는 것(연목구어, 緣木求魚)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