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옥상에서 고객이 니퍼를 던지는 것을 봤습니다. 순간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어요. 너무 무서웠거든요.”

티브로드 케이블방송 수리기사인 A씨는 아날로그TV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컨버터를 무료로 설치해 달라는 고객 요구를 거절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화가 난 고객이 옥상에 니퍼를 들고 올라가 티브로드 케이블을 끊더니 1층에 대기하고 있던 A씨에게 던진 것이다.

LG유플러스 인터넷 수리기사 B씨는 흉기를 든 고객에게서 협박을 받았다. 고장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하자 고객은 과도로 상을 치면서 그를 위협했다. B씨는 이날 급히 업무를 종료하고 빠져나왔지만, 다음달 또다시 같은 집을 방문하면서 위험 상황에 마주하게 됐다. 이번엔 고객이 술에 취한 상태로 달궈진 프라이팬을 싱크대에 내리치면서 폭언을 했다. B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해당 고객은 살인미수와 업무방해, 감금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방문노동자 77% 폭언·폭행 당해

민주노총과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8간담회실에서 개최한 ‘방문노동자의 안전과 작업중지권 토론회’에서 노동자들이 증언한 사례들이다. 올해 6월 충주에서 한 고객이 자신의 집을 방문한 인터넷 수리기사를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방문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고객의 집이라는 공간적 특성상 기사의 대처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작업중지권 강화를 요구했다.

이날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에 따르면 인터넷·케이블방송·가전제품 방문 설치·수리기사 대다수가 고객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 공동행동이 7월부터 21일간 7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7.1%(614명)가 "고객의 폭행·폭언으로 안전과 생명 위협을 느낀 적 있다"고 답했다. 욕설을 통한 협박과 제품 또는 물건 던지기, 밀치기, 멱살 잡기 등 신체적 폭력이 보고됐다. 흉기를 들고 위협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폭력 상황이 발생했을 때 회사가 나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답한 이들은 14.6%(82명)에 그쳤다.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했다"고 답했다. 회사에 알렸지만 회사가 무대책·무관심으로 대응하거나, 오히려 회사가 고객 요구를 수용하고 사과를 강요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작업중지권 행사권 노동자에게 줘야”

해결책으로는 '작업중지권 사용 현실화'가 제시됐다. 작업중지권은 산업안전보건법(26조)에 명시돼 있지만 현실에서는 사용이 제한적이다.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위원은 “산업안전보건법은 작업을 중지하고 노동자를 대피시키며 안전보건상 조치를 행하는 주체를 사업주로 명시하고 있다”며 “노동자가 직접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 연구위원은 “희망연대노조 각 지부별 단체협약을 분석한 결과 작업중지권 행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이 보장한 수준에 그쳤다”며 “작업중지 이후 노사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한 문구를 단체협약에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회사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황수진 공동행동 상황실장은 “고객을 왕으로 여기는 서비스정책이 노동자를 하인으로 전락시켰다”며 “고객의 인식과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본사가 서비스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논의가 고객과 노동자의 대립구도로 가면 진짜 책임자인 회사 역할이 가려질 수 있다”며 “노동자 권리와 인격 또한 고객 권리만큼 중요하다는 원칙을 원·하청 모두에게 명확히 정립하고, 회사는 고객에게 지켜야 할 의무를 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라두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은 “노동자들은 위험하고 모욕적인 상황을 마주해도 고객 평가제도와 실적 압박 때문에 작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며 “평가와 실적 걱정 없이 노동자들이 작업중지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고객평가제도를 완화 또는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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