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선산업 하청노동자 블랙리스트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대안마련 토론회'를 개최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은 2003년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해당 업체를 줄줄이 폐업시켰다. 노조에 참여한 조합원은 리스트를 만들어 재취업을 가로막았다. 7년간의 재판 끝에 대법원은 2010년 현대중공업의 이 같은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다.

법원 판결 후 블랙리스트는 사라졌을까. 올해 4월 하청업체 폐업 뒤 번번이 재취업에서 탈락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합원 2명이 울산시내 고가대로 교각에 올랐다. 이들은 블랙리스트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7월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업체에서 물량팀으로 일하던 김아무개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물량팀장이던 그는 임금체불에 항의한 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재취업이 가로막혔다. 같이 일하던 동료·후배들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자책했다. 신분을 숨긴 채 대우조선해양 현장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 그는 근무가 없는 날 목숨을 끊었다.

금속노조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선산업 하청노동자 블랙리스트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대안마련 토론회'를 개최했다. 노조가 목포·울산·거제·통영·창원지역 조선업 비정규직 9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하청노동자 상당수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거나,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146명(15.8%)은 동료가 블랙리스트를 경험했다고 답했고, 52명(5.6%)은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본인이 직접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48명(5.2%)이었다. 직·간접 경험을 체험한 노동자가 246명(26.5%)이나 된다. 블랙리스트에 의한 불이익 유형을 살펴봤더니 취업·임금 불이익, 징계·해고, 작업시간 불이익, 현장감시 사례가 지목됐다.

어떤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일까. 본인이 경험한 사람들(48명)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13명은 "회사 부조리에 항의해서"라고 답했다. 노조활동을 하거나 노동자 권리를 주장한 뒤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밝힌 노동자는 각각 8명이었다. 산재처리를 요구(6명)하거나, 평소 밉보였기 때문(4명)이라는 응답도 있었다.

정준영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조합원 취업을 방해하기 위한 블랙리스트는 근로기준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한 중대 범죄"라며 "블랙리스트 사용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거나, 원청업체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하도록 법률에 명시하는 등의 대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손정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은 "블랙리스트를 궁극적으로 폐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노조 조직화"라며 "이 문제를 전담하는 특별기구를 설치하고 노조가 참여해 대응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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