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고속도로에서 고속버스 졸음운전으로 추정되는 교통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사고를 낸 고속버스 운전기사들이 추가근로를 하던 중이었거나 고속도로 정체를 이유로 법적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채 운전대를 잡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4일 자동차노련에 따르면 지난 2일 오전 11시10분께 경기도 안성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안성휴게소 부근에서 앞서 가던 고속버스를 뒤에서 들이받고 사망한 동양고속 기사 A(46)씨는 사고 발생 전 4일 연속 일하고 이날 5일째 운전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개 고속버스는 '4일 근무 2일 휴무' 형태로 운영된다. 근무일정대로라면 8월29일부터 9월1일까지 일하고 9월2~3일은 쉬어야 했지만 A씨는 2일에도 운전대를 잡았다.

연맹 관계자는 "고속버스는 주말이나 연휴를 중심으로 집중배차하는 잘못된 관행 때문에 적정인력을 확보하지 않고 있다"며 "4일 연속 운행을 하고 2일을 쉬는 장시간 노동이 관행화된 데다 A씨는 원래 쉬어야 하는 날 추가근로까지 한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같은날 오후 3시55분께 충남 천안 동남구 천안~논산 고속도로에서는 고속버스가 앞서 달리는 싼타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2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치는 8중 추돌사고가 일어났다.

싼타페 승용차를 들이받은 금호고속 기사 B(57)씨는 20년 무사고 운전으로 포상휴가를 받고 돌아온 다음날 안타깝게도 사망사고를 낸 가해자가 됐다. 연맹 광주전남지역자동차노조 금호고속지부에 따르면 B씨는 지난달 28일부터 9월1일까지 포상휴가차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단체협약상 포상휴가 후 하루를 쉬어야 하는데 B씨는 다음날 바로 일을 했다.

B씨는 이날 오전 전남 고흥에서 출발해 서울에 도착한 뒤 다시 고흥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보통 고흥에서 서울까지는 4시간30분이 걸린다. 그런데 이날 오전 발생한 경부고속도로 추돌사고 여파로 길이 막히면서 버스가 연착되는 바람에 B씨는 서울에 도착하고 불과 30분 만에 다시 고흥행 버스를 운전했다.

손한규 금호고속지부장은 "보통 1시간30분에서 2시간 정도 휴게시간을 갖고 출발하는데 그날은 30분밖에 못 쉬고 운전했다고 한다"며 "(운전을 대신할) 대기기사들이 많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라고 안타까워했다.

노동계는 장시간 운전을 규제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특례조항 개정을 미루는 정부와 국회에 책임을 물었다.

자동차노련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국회의 무책임과 책임회피가 부른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연맹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상 최소휴게시간과 연속휴식시간이 지켜지도록 행정관청이 강력하게 단속만 해도 많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며 "국회도 주 52시간 시행문제와 특례업종 축소를 패키지로 논의하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이미 합의된 특례업종 축소부터 먼저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공공운수노조도 성명을 내고 "급할 게 없다는 식의 사고대책에 국민이 죽어 나가고 있다"며 "육상도로 운전자의 노동시간을 하루 10시간·주 52시간으로 규제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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