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자은 기자
집배원 과로사가 잇따르자 장시간 노동을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집배원들은 “만성적 인력부족으로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 가운데 집배 인력충원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집배부하량 산정시스템’이 지목됐다. 우정사업본부 집배부하량 산정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집배인력은 ‘충분’하다. 집배부하량 산정 근거와 타당성이 부적절하고 작업자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시스템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배경이다.

◇여유율은 단 3%, 표준시간 근거 없이 줄여=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집배원 과로사 문제 해결책 토론회에서 이같은 주장이 나왔다. 이날 토론회는 고용진·박주민·신경민·신창현·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신용현·오세정 국민의당 의원, 이정미·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집배노동자 장시간 노동철폐 및 과로사·자살방지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주최했다.

발제를 맡은 김철홍 인천대 교수(산업경영공학)는 집배부하량 산정시스템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김 교수는 “부하량 산정 방식과 기준에 근거와 타당성이 결여된 것으로 조사됐다”며 “작업자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비인권적 관리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부하량 산정시스템은 2004년부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했다. 일반통상 배달 2.1초·등기 28초·도착안내서 발행 35.4초 같이 세부단위업무 표준시간을 초단위로 설정해 업무시간을 계산한다. 지난해 말부터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산정시스템에 따르면 여유율은 단 3%다. 김철홍 교수는 “자동차 조립작업은 15~20%, 제철·조선처럼 힘든 작업은 30% 이상 여유율을 확보해야 한다”며 “휴게시간만 고려해도 여유율을 10% 이상 잡아야 하는데 무슨 근거로 3%로 산정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가 ETRI에서 개발한 산정모델을 분석했더니 2005년 모델에서 2010년 모델로 변경할 때 일반통상 시간은 16.8%, 소포는 7.16%, 택배픽업은 무려 43.4%를 단축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표준시간을 재산정하면서 근거 없이 작업시간을 줄였다”며 “표준시간을 설정한 뒤 현장에서 실제로 가능한지 검증해야 하는데도 타당성 검증 없이 일방적으로 적용했다”고 우려했다.

◇다른 업종보다 노동강도 강해=이날 토론자로 나온 김효 집배노조 정책국장은 부하량 시스템에서 통상우편물 배달 도보이동시간이 0초로 계산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 국장은 “실제 노동시간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이같은 조작방법으로 매년 집배부하량이 전국 평균 1.0에 근접한 결과값을 도출한다”고 말했다. 그는 “각각의 단위업무 수행 후 대기시간 없이 다른 업무로 연결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집배업무에 적용하기 부적절한 방식”이라며 “세부업무를 초단위로 산출해 합산하는 집배부하량 시스템은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훈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연합 사무처장은 부산·경남지역 13개 우체국 집배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그는 “심박 지수·에너지 소비량·열사병 지수 등을 측정한 결과 집배원이 다른 업종 노동자보다 작업강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인력부족으로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노동강도가 강화돼 사고위험이 증가하는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 결과 심박지수는 평균 105로 건설기계제조 용접(92), 중공업 용접(102) 노동자보다 높았다.

집배원의 평균 심박지수에 따른 적정근무시간은 하루 4시간이다. 분당 평균 에너지 소모량도 5.8킬로칼로리로 에너지 소비량에 따른 휴식시간은 시간당 22분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주택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서기관은 “인력충원이 우선돼야 한다”며 “단체협약을 개정해 주 52시간까지만 일하도록 하면 초과하는 부분은 노동부가 조사하고 지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사정은 지난달 23일 ‘집배원 근로조건 개선 기획단’을 구성했다. 우정사업본부 노사(각 2인)와 정부위원(1인)·전문가위원(6인) 등 11명이 참여한다. 기획단은 집배원 작업환경 조사와 노동실태 조사를 하고 고용형태 개선방안을 도출한다. 올해 연말까지 운영하는데, 필요하면 2개월 연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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