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건설현장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면 시공자에게 집중된 안전관리 의무를 발주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동계는 적정 공사기간 확보와 노동자가 참여하는 안전관리 체계 구축을 요구했다. 김삼화·윤영일 국민의당 의원과 안전보건공단이 3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건설업 발주자 책임강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법·제도에 목숨 달려"=2014년 노동자 486명이 건설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2015년에는 493명이 숨졌다. 지난해에는 499명으로 늘어났다. 전체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969명)의 절반 이상이 건설현장에서 사망했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원정훈 충북대 교수(안전공학)는 한국과 영국의 건설업 사망만인율을 비교했다. 사망만인율은 노동자 1만명당 사망자를 뜻한다. 원 교수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 건설업 사망만인율은 1.47명, 영국은 0.162명이다. 노동자수 대비 한국이 영국보다 10배 가까이 사망자가 많다.

한국과 영국의 차이는 무엇일까. 원 교수는 “제도적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짚었다. 영국은 1994년 건설업 설계·관리에 관한 법(CDM)을 제정했다. 2007년과 2015년 두 차례 법 개정이 이뤄지는 사이 노동자 안전보건과 관련한 발주자 이행사항이 규정됐고, 제도 적용범위가 직영공사까지 확대됐다. 원 교수는 "해당 법률에는 발주자가 공사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의 안전·보건에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히 조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발주자가 설계·시공단계 안전보건계획과 관리 역할을 할 주설계자를 선임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어떨까. 원 교수는 "국내 건설공사 현장에서 안전관리 의무와 책임은 현행법상 시공자에게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관리 의무가 부여되는 '사업주'는 시공자를 의미한다. 건설기술 진흥법에는 발주자의 안전관리 의무가 명시돼 있지만 공공공사에 한해 적용된다. 방식도 간접적이다. 발주자가 원청 소속 공사 감독자를 선임하거나 외부업체에 관리를 위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 건설공사가 전체의 60%를 차지하는 현실에서는 안전관리에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원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시공사 중심 안전보건 관리체계에서는 정부 규제와 간섭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건설공사 재해율을 감소시킬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발주자가 공사현장 안전보건을 총괄하는 보건전문가를 선임해 노동자 안전과 보건조치를 총괄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동부 '원청 책임 강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추진=정부는 법 개정을 예고했다. 황종철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과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발주자의 단계별 책임을 부여하고, 단계별 의무사항을 규정하는 법안을 마련 중"이라며 "공사 계획단계에서 근로자 안전과 관련해 예상되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관리계획을 수립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대 노총은 노동자 참여와 충분한 공사기간 보장을 촉구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건설현장 산재예방은 각 주체의 참여가 활성화돼야 하지만 현재 구조에서는 노동자와 노조의 참여가 공백 상태”라며 “노동자가 건설산재 예방주체로 참여하도록 발주처가 원·하청 안전보건협의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실장은 "공사기간을 산정하는 법적인 기준이 없어 새벽·야간 작업으로 산재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며 "발주자 귀책사유나 천재지변으로 공사가 지연되면 그 기간만큼 자동으로 공기를 연장하도록 발주자에게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기 국토교통부 건설안전과장은 "적정한 비용과 공사기간을 확보하도록 사업계획 타당성을 확인하는 행정적 절차를 마련하고 그 절차를 고의로 이행하지 않거나 부당한 지시를 한 경우에는 발주자를 제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