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자은 기자
정부는 지난달 20일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간접고용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방식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원청에 직접고용하거나, 자회사를 설립해 채용하거나,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을 설립해 고용하는 방식이다. 공공기관들은 자회사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계는 “자회사는 용역과 다를 게 없는 간접고용에 불과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공공기관이 정규직 전환을 자회사 방식으로 택하는 경우 갖춰야 할 요건을 명확히 하고 정부가 요건이 충족되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공공운수노조 주최로 열린 '공공부문 자회사, 쟁점과 해법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자회사가 갖춰야 할 요건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어떤 자회사인지가 중요”

남우근 정책위원은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서 자회사 형태에 대한 구체적인 추가설명이 들어 있지 않다”며 “최소한의 기준을 수립해야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공공기관의 자회사 운영 사례를 보면 이런 우려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한국철도공사는 인력 감축과 구조조정 수단으로 자회사를 활용했다. 기존에 정규직이 하던 업무를 외주화하는 데 자회사를 활용했다. 현재 5개의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자회사는 저임금 노동을 사용하기 위한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남 정책위원은 “사업기능상 독립성이 없이 원청기관에 부속된 기능을 수행하며 저임금 인력을 공급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도시철도엔지니어링도 구조조정 차원에서 옛 서울도시철도공사(현 서울교통공사)가 설립한 자회사다. 서울시는 2008년 9월 공기업 혁신안에 따라 공사 인력 10%를 감축하고 이 인원을 자회사로 이적시켰다.

반면 메트로환경과 다산콜재단은 서울시가 간접고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설립한 자회사(재단)다. 고용이 안정되는 장점은 있지만 임금이나 처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남 정책위원은 “자회사 방식이 구조조정 수단인지, 간접고용 해법의 일환인지에 따라 임금·고용에서 차이가 있다”며 “구조조정 수단인 경우 노동자들은 임금·고용에서 열악한 조건에 내몰리고 간접고용 해법으로 만든 자회사는 고용안정을 이룰 수 있지만 임금이나 노동조건 향상은 별도로 논의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인건비 부담-적정임금 접점 찾기

그는 자회사가 갖춰야 할 요건으로 △간접고용 법리에서 자유로운 형태 △전문성 확보 등 경영효율성에 부합 △정규직화 취지를 반영해 노동권이 보장되는 형태를 제안했다. 적어도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좋은 일자리라는 평을 받는 자회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조건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소지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자회사 운영의 독립성과 업무의 독자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특정 사업부문의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은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추진된 배경에 걸맞게 고용안정·적정임금·차별 없는 대우·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남 정책위원은 “만약 총인건비제와 정원관리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진다면 자회사 방식을 선택할 이유가 상당부분 없어지게 될 것”이라며 “직접고용을 통한 장기적 인건비 부담은 발생할 수 있지만 적절하게 임금체계를 설계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적정임금 보장을 회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회사를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경영진의 인건비 부담과 노동자의 적정임금 보장의 접점을 찾기 위한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부, 중앙컨설팅팀 정규직 전환 모델 구상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권구형 고용노동부 공공기관노사관계과장은 “과거 용역업체와 같은 간접고용 방식의 자회사 모델은 부적절하다고 보고 그런 방식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현재 정부는 중앙컨설팅팀을 구성해 정규직 전환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권 과장은 “여러 이해관계를 고려해 불가피하게 전환방식으로 자회사 모델을 선택하는 기관이 있을 것”이라며 “전문적이고 독립된 기능을 수행하는 모델이 돼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정부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공공부문 특성상 정부가 합리적이고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면 사용자가 결정하기 힘든 구조”라며 “노정 간 협의와 전문가들의 논의를 통해 구체적 기준이 설정되면 현장에서 보다 바람직한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용자들이나 정부쪽에서는 자회사를 선호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고 있다”며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람이 직접고용한다는 원칙을 갖고 자회사는 예외적으로 업무의 독립성을 감안해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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