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지난주 삼성 재판에 눈이 쏠렸다면 이번주에는 기아자동차 재판에 눈이 쏠릴 것이다. 31일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판결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 노사관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사용자들은 벌써 여론몰이에 나섰다. 소송에서 패소하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사용자의 이런 태도를 보면 염치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용자는 정기상여금을 비통상으로 왜곡시킨 주범이다. 연장근로수당과 연차수당 같은 법정수당을 적게 지급하기 위한 꼼수를 부린 것이다. 이런 얄팍한 수로 우리나라 노동자는 장시간·저임금 구조의 덫에서 수년간 고통받아야 했다.

정기상여금은 상식의 눈으로 보더라도 통상급이다. 기존 판례가 ‘15일 이상 재직자’라는 문구 하나로 통상급과 비통상급을 구분하는 것을 보면 법이 이렇게까지 치졸할 수 있나 싶다. 마땅히 처음부터 통상급으로 적용했더라면 불필요한 갈등비용을 낭비할 이유도 없었다.

노동계도 이번 판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노동계가 승소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마음 한쪽이 무겁다. 정기상여금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그 속에 악마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낮은 기본급을 보조하는, 지킬박사처럼 착한 존재다. 그런데 정기상여금은 노동자와 노동자의 임금 불평등을 초래하는 주범이다. 정기상여금은 기업 내부 노동자 사이와 기업 간 노동자 사이의 임금격차를 스멀스멀 벌리는 악마 같은 존재다.

먼저 기업 내부를 들여다보자. 정기상여금은 대부분 회사에서 정률방식으로 지급한다. 정률방식은 정해진 비율이라는 뜻인데, 기준임금의 ‘몇%’ 식으로 정한다. 기준임금은 회사마다 다르다. 기본급으로 정하는 회사가 있고 통상급으로 정하는 회사도 있다. 기아차는 통상임금(현장에서는 ‘2시급’이라고 부른다)의 750%다. 이런 사정은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정기상여금이 750%인 회사에서 기본급이 월 1만원이 인상되면, 총액임금은 월 1만6천250원의 인상효과가 발생한다. 기본급 인상분에 정기상여금 인상분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정기상여금 인상분의 경우 인상된 1만원에 750%를 곱해 12월로 나누면 6천250원이 된다.

정률로 계산되는 정기상여금은 기본급이 연공급으로 결정되는 곳에서는 연령 간 임금격차에 영향을 미친다. 정기상여금이 750%인 회사에서 신입사원의 기본급이 1만원이고 고참사원이 2만원일 때 신입사원의 정기상여금은 연 7만5천원이고 고참사원은 연 15만원이다. 두 사람의 임금격차는 7만5천원이다. 매년 기본급이 1% 인상됐다고 치면 10년이 지나면 두 사람 임금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정률로 계산되는 임금의 복리효과 때문이다.

정기상여금은 기업 내(내부노동시장)뿐만 아니라 기업 간(외부노동시장) 임금격차의 원인이기도 하다. 지난해 전국사업체노동력조사를 보면 300인 이하 기업의 임금총액은 300인 이상 기업의 61.5% 수준이다. 그런데 특별급여는 300인 이하 기업이 28.9%에 불과하다. 통계는 특별급여가 기업규모 간 양극화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정부 통계에 특별급여가 정기상여금과 성과급을 포함한 값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현실에서 기업규모 간 정기상여금 지급률 차이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쯤 되면 정기상여금을 개편해야 할 근거가 충분하다고 본다. 개편방향은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첫째, 임금체계 개편과 상여금의 통합을 연결하는 것이다. 임금체계를 개편할 때 정기상여금에는 연공급만 있는 게 아니라 직무나 숙련 관련 수당이 포함돼 있다는 단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 개인의 상여금 속에 직무·숙련 차이에 따라 차등해서 지급되는 수당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활발하게 전개할 수 있다. 실제 현대자동차 노사가 상여금을 기본기초급과 개별기초급으로 구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 상여금을 노동시간단축과 연결하는 것이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외수당과 연차수당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연장근로시간을 줄이고 연차휴가 사용일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기아자동차의 통상임금 판결이 노동자의 임금 안정성은 높이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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