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향법)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 사건의 본질이다.”

지난 25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1심 재판 선고 당시 법원이 밝힌 이 사건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재용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과연 그 본질에 맞는 결과라 할 수 있을까.

법원은 이재용이 안정적으로 삼성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포괄적인 청탁을 했고, 이를 대가로 최순실·정유라 등에게 지원한 사실을 인정했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철저히 사적으로 남용한 대통령의 만행과 뿌리 깊은 정경유착이 만나 삼성이라는 자본의, 이재용이라는 개인의 경영권 승계에 동원된 사실이 법정에서 확인된 것이다.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며 실시간 속보로 전해지던 중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대목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뇌물공여 혐의 중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지원 부분은 전부 무죄로 봤다. 약 450억원에 이르는 뇌물공여 혐의 중 204억원에 달하는 이 부분에 대해 그 ‘동기’를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뇌물의 대상이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막연히 선처해 줄 것이라는 기대나 다른 이유로 금품을 준 경우에는 대가성이 부정된다고 봤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으로, 대가성이 없다고 봤다. 기업인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권한과 영향력 때문에 요구를 수용할지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하기 어렵고, 특히 ‘공익 목적’ 단체에 출연을 요청할 경우 그 구체적인 이유를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서로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는 이들 사이에서, 과연 ‘수동적’ 뇌물이 가능할까. 수차례 정권이 바뀌어도 공고히 자신들의 성을 유지하는 재벌기업들에게 수동적인 뇌물이 가능할까.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내세우며 이익창출에 유리하게 법과 제도를 바꾸고, 그룹 총수 일가의 안정적인 경영승계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이들에게, 과연 대통령이 굴복해야 하는 두려운 존재일까. 오히려 막강한 권한과 영향력을 가진 대통령이기 때문에 포괄적인 뇌물죄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적인 친분관계를 위해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총동원했던 박근혜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던 이재용. 똑 닮아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손을 맞잡았을 뿐이다. 이들이 어떤 심정으로 대화를 나눴을지,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사치에 불과하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발생한 일이라는 법원 스스로의 판단과도 모순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법원은 이재용에게 선고 가능한 최저형을 선고했다. 법원이 이 사건에서 유죄로 인정한 혐의에 대해 법이 정한 형량을 합쳐 보면 징역 5년형 이상에서 45년형까지다. 그중 가장 낮은 형을 선고한 것이다. 형량 결정은 법원의 재량이지만, 법원 스스로 판단한 이 사건의 본질과 당사자들의 책임의 엄중함에 비춰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15년 민중총궐기 등 여러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형사재판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이후 항소심에서 3년형으로 감형됐다). 재벌그룹 총수 일가의 사적 이익을 위해 자본과 권력을 동원한 행위와 민중의 목소리를 모아 내고 이를 전달하기 위한 집회를 주최한 행위가 같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용에 대한 1심 재판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밀착’을 드러내고 그 책임을 묻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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