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했던 공영방송. 저항하는 구성원은 징계·해고됐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벽만 보던' 아나운서는 스스로 회사를 떠났다. 한데 최근 공영방송 MBC·KBS 내부가 심상치 않다. MBC·KBS 구성원들이 “언론적폐 청산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며 투쟁 깃발을 세우고 있다. 취재기자와 PD·아나운서 등 350여명이 제작거부에 들어간 MBC는 5년 만에 파업을 예고했다. KBS 기자와 PD는 제작거부를 선언했다.

MBC, 5년 만에 파업하나

언론노조 MBC본부가 24일부터 엿새간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한다. 조합원 1천800여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안건이 가결되면 9월 초 총파업에 들어간다. MBC본부는 보도 공정성 확립과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김장겸 MBC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 사퇴를 요구 중이다.

제작 자율성 침해를 이유로 <PD수첩> 제작진이 지난달 21일 제작거부에 들어간 뒤 시사제작국·콘텐츠제작국·보도국·아나운서국·드라마국·편성국·예능국에 소속 350명이 제작거부에 동참했다. 이재은 아나운서는 지난 22일 제작거부 입장을 밝히며 “뉴스를 진행하는 동료들은 ‘오늘 큐시트에는 어떤 뉴스가 있을까’ 두려워했다”며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는 뉴스는 아나운서들에게 언론인의 역할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라디오PD들은 28일부터 전면적인 제작거부에 들어간다. 라디오PD들은 24일 성명을 내고 “모든 프로그램에서 ‘세월호’와 ‘위안부’는 금기어였고, PD에게는 진행자 선정 자율성도, 아이템 선택 자유도 없었다”며 “경영진이 물러나고 제작 자율성을 되찾는 그날까지 우리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MBC 제작거부 움직임은 KBS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KBS 구성원들은 박근혜 정권 낙하산 인사인 고대영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제작거부를 선언했다. 서울 본사 취재기자와 촬영기자로 구성된 KBS기자협회는 23일 제작거부를 결정했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 기자들이 소속된 전국기자협회와 전국촬영기자협회는 24~25일 제작거부 찬반투표를 한다. PD협회는 30일 오전 7시부터 일제히 제작거부에 돌입한다.

“파업 막는 길은 경영진 퇴진뿐”

김장겸 MBC 사장은 “퇴진은 절대 없다”는 입장이다. 김 사장은 23일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본 적도 없는 문건으로 교묘히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로 연결해 경영진을 흔들고 있다”며 “경영진이 퇴진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방송 독립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권력과 언론노조에 의해 경영진이 교체되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며 “그렇게 해야 MBC가 정치권력과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론은 김 사장 생각과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기자협회보가 이달 1~4일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6.5%가 “고대영·김장겸 사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사퇴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은 8.8%에 그쳤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6명이 MBC 제작거부와 파업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김장겸 사장의 퇴진 불가 입장에 대해 “공영방송을 사회적 흉물로 망가뜨려 놓은 장본인이 마치 정의의 화신이라도 되는 양 목소리를 높인다”며 “MBC 파업에 대한 수많은 지지와 격려, 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는 국민 다수의 목소리가 불순세력 음모라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김장겸 사장을 비롯해 박근혜 정권에 충성한 일부 MBC 경영진이야말로 파업을 불러온 원인제공자”라며 “MBC 파업을 막는 길은 김장겸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 사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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