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국민의 압도적 지지하에 진행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성장’을 향한 광폭 행보가 연일 사이다같이 전개되고 있다. 현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을 인큐베이팅한 것은 잘 알다시피 서울시였다.

중앙정부가 창조경제라는 술주정 같은 뇌까림을 즐기며, 정작 노동은 궁지로 몰아가고 노동개혁이라는 유체이탈식 화법으로 국정농단을 가리던 중에 ‘노동존중 서울시’를 표방하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근로자이사제, 청년수당 등의 카드를 꺼내 들었던 서울시의 행보는 대조적으로 돋보였다. 훗날 누군가 한국 노동정책사를 쓴다면, 2010년대 중·후반기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이 아니라 아마도 당시 서울시와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이 주된 페이지를 차지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기는 특히나 중앙정부의 헛발질과 일부 지방정부의 참신하고 진정성 있는 아이디어 제시·실천이 대조를 이룬 시기였다. 앞서 언급한 서울시가 그러했고, 근래에 ‘광주형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회자되는 광주시 정책 역시 그러했다.

서울과 광주가 노동정책을 전향적으로 실천한 것은 단지 내용적 적실성과 참신성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바로 노동정책의 지방화(localization)와 분권화(de-centralization)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지금 중앙정부의 막강한 추동력에 힘입어 전개되고 있는 개혁도 조만간 지방화와 분권화 흐름으로 갈아타야 제대로 지속되고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노동정책의 ‘로컬라이제이션’ 흐름은 흥미롭게도 최근 국제사회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달 5일과 6일 국제노동기구(ILO)는 서울시가 개최하는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에 사무총장을 비롯한 기구 내 주요 인사들을 대거 참석시킨다.

이번 행사는 일단 서울시가 발현시키고 끌고 온 정책아이디어와 실천을 국제적으로 꺼내 놓고 평가받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국제적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ILO가 주창해 온 ‘좋은 일자리(decent work)’를 향한 논의와 실천의 질적인 심화를 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간 주로 국가와 중앙정부만을 대상으로 하면서 더 효과적으로 구체화하지 못한 ILO의 실천 한계를 도시·지역까지 확대시키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로컬화(localization) 시도가 ILO의 결합을 통해 글로벌화(globalization)되는 것이다.

글로벌화와 로컬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둘은 변증법적 운동의 양축을 이룬다. 둘을 아울러 가리키는 표현이 바로 ‘글로컬라이제이션’이라고 하는 신조어다. 이미 20년 전부터 국제적으로 학계·정책계·실천계 등에서 두로 강조해 온 것으로 세계화와 지방화의 숙명적 결합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번에 서울시가 개최하는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이야말로 노동정책 글로컬라이제이션의 모범적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단언컨대 한국의 노동정책은 이제 한편으로는 로컬화를, 다른 한편으로는 글로벌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때가 됐다. 특히 현 시기 글로벌화의 과제와 의미는 매우 크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하고 있는 바, 결사의 자유 보장이나 강제노동 금지 같은 미비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것은 당장 매우 굵직한 과제다. 그를 통해 한국에서 노동하는 이들에게 글로벌 규범과 가치가 적용되도록 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노동정책의 글로벌화는 또 다른 측면을 갖는다. 지난주 노사발전재단은 이례적으로 한국의 사회적 대화와 노사관계 정책 및 제도의 발전경험을 아시아 개발도상국들과 나누고 그들의 발전을 도모하는 데 필요한 정책지식자원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교육·실천 프로그램을 국제협력단(KOICA)의 재정지원을 토대로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했다. 여기에는 베트남·라오스·스리랑카 노동부 직원들이 참석해 열띤 논의를 펼쳤는데, 필자도 강사진 일원으로 함께했다.

현장에서 세 나라 공무원들은 자국의 한계를 토로하면서, 한국의 성취와 한계 모두를 공유한 후 우리측 강사진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개선책을 상상하고 액션플랜(action-plan)을 마련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 예컨대 베트남 참가자들은 갈등 중재시스템 개선을 추진하면서 우리의 노동위원회 모델을 일부 적용하려는 의향을 보였고, 스리랑카 참가자들은 근로감독관 역량강화와 정보수집 시스템 전산화를 도모하면서 우리나라에 도움을 청했다.

강의 내용은 비단 한국의 시스템과 경험을 자랑만 하는 식의 왜곡된 허상에 머무르지 않았다. 오히려 ILO·국제연합(UN)·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강조하는 국제노동규범 표준을 참가자들과 공유하면서 한국의 한계 역시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다뤘다.

향후 한국 노동정책의 역동적 ‘글로컬화’를 통해 부디 그것이 우리를 살찌우고 또 우리 이웃나라들도 같이 살찌우는 이중의 성취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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