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근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몇 해 전인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조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갑을관계'가 무엇인지 물어봤을 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는지, 또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포기한 전력이 있다. 계약서는 고사하고 갑옷 갑(甲)자도 쓸 줄 모르던 조카는 언제 어디서 갑을관계라는 표현을 알게 됐을까. 조카가 음양오행, 천간에 대해 알기 전에 갑을관계라는 단어가 사라질 수 있을까. 제 엄마 손에 이끌려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제 집으로 돌아가던 조카의 뒷모습에 오버랩된 나의 기대는, 대책 없는 순진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이제 갑을관계보다 더 절망적인 '갑질'이라는 단어마저 한반도를 넘어 서구에까지 'gapjil'이라는 음차문구를 달고 널리 알려지게 됐으니 말이다(2017년 7월5일자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참조).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가적 글로벌 기업에서 1인 사업장에 이르기까지, 프랜차이즈 관계에서 간접고용에 이르기까지, 민간과 공공부문, 나아가 군 조직을 가리지 않고, 눈 뜨고 볼 수 없는 갑질의 향연이 매일 언론 지상을 장식하고 있다. '갑질 공화국'이라는 오명에 대한 변명의 여지는, 이제 없는 것으로 보인다.

노골화된 욕망의 시대에서, 권력적 우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는 일은 이제 개인적 일탈 수준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이른바 '종속적 노동'을 본질로 하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사용자 선의를 앙망하며 갑질 없는 일터를 기대하는 것은, 몇 해 전 나의 기대와 마찬가지로 대책 없는 순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임금을 공제하는 사용자,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집요하게 지방을 전전하도록 인사발령을 하는 사용자,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해 근로조건을 저하시키는 사용자, 이들 앞에 임금 전액불 지급 원칙이나 부당노동행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법리는 너무 멀리 있고, 그 사법(司法)적 구제절차는 더더욱 멀리 있다.

발칙한 상상을 해 본다. 사용자든 노동자든, 경제활동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노동관계법령에 대한 교육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제도를 설계한다. 의무교육 과정의 일환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교육 내용은 구체적일수록 좋다. 근로계약서 작성방법과 연장·야간근로수당·퇴직금 계산방법은 필수다. 단체교섭 롤 플레이(role-play)도 포함하면 어떨까.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다수 배치된 근로감독관은 노동자가 노동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부당한 사용자의 행위를 수시로 감독하고, 사용자의 부당한 행위가 장기간 지속되지 않도록 하는 1차적 업무를 수행한다. 나아가 필요한 경우 노동자에게 일상적 법률상담을 제공하면서, 말 그대로 일하는 사람들의 '친구'로 자리매김한다.

사용자의 갑질로부터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받은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신속하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사법제도를 설계한다. 형사적 처벌이 예정된 사용자의 범법행위는 반드시 3개월 이내에 기소하도록 패스트 트랙(fast-track) 제도를 도입한다. 이를 전담하는 노동검사는 노동법이 단순한 민법의 아류가 아님을, 그리고 자신이 사건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노동자 고통이 깊어진다는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는 노동전문가로 구성한다.

민사적 구제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소장 접수시부터 판결 선고시까지 3개월을 넘기지 않도록 법원에서 기일을 관리한다. 이를 위해 노동사건만을 전담하는 노동법원을 설치하고, 인지대에 대한 특례를 둬서 노동자의 노동법원 접근성을 제고한다. 사용자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유의미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 '갑질' 한 번이면 다시는 사업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경각심을 가지도록, 그래서 다시는 사용자가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아니 반복할 수 없도록 한다.

권력은 통제받지 않으면 부패해 남용된다. 이는 역사를 통해 증명된 명제다. 지난 수년간 사용자 권력에 대한 사회적 통제장치를 혁파 대상인 '규제'로 이해하고 이를 암 덩어리로 치부해 온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펼쳐 왔는지, 그래서 노동자의 권리가 어떠한 위기에 봉착했는지는 구체적 설명을 요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용자 선의만을 기대할 수 없다면 이는 제도로 유도해야 한다. 몇 가지 발칙한 상상만으로 일터에 만연한 갑질을 완전히 발본색원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또한 순진할 수 있다. 그러나 이조차도 담보할 수 없는 사회라면, 일터의 갑질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 구조 속에서, 미래의 노동자인 우리 다음 세대들은 마찬가지로 고통받을 것이다. 이러한 굴레를 받아들일 것인가, 끊어 낼 것인가.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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