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본란 6월5일자에서 적폐청산과 관련해 <문제는 적폐청산이 아닌 '구체제 자체의 청산'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쓴 바 있다. 이 말은 적폐청산이 필요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촛불혁명을 통해 청산할 것이 적폐에 한정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만약 적폐는 청산하고 구체제는 청산하지 않을 경우 차후에 얼마든지 적폐가 재생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지적이었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노태우 정권하에서 5공 청산 청문회를 열어 광주민중항쟁의 정당성을 공인하고, 김영삼 정부에서 정치군부를 정치에서 손 떼게 하는 등 일정하게 구체제를 '개혁'지만 그것을 제대로 '청산'하지 않은 결과 이명박·박근혜 일당의 집권으로 파쇼권력이 재등장하고 파쇼체제 악폐들이 재생됐던 지난 경험에 입각한 성찰의 언어였다.

이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구체제 청산은 차후 국회를 재구성한 다음에 하고 우선은 적폐청산에 집중한다는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접근법에 대해 이해되는 바가 있다. 촛불혁명을 했다고 하지만 합법적 절차를 거쳐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하는 방식으로 했기 때문에 국회에 대해서도 그 구성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법이 아니라 이성에 입각해 판단하면 탄핵된 정권을 창출한 정당은 이름만 바꿔치기할 것이 아니라 탄핵된 대통령과 더불어 해산돼야 마땅하고, 그 경우 국회도 재구성돼야 마땅하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혁명정부답게 재구성된 국회와 함께 구체제 청산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적폐청산에 있어서도 문재인 정부는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적폐라고 규정하는 것들은 언제부터 누적된 악폐를 말하는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저질러진 악폐인가, 아니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저질러진 악폐도 포함하는가. 박정희 체제 이후 모든 악폐를 말하는가, 아니면 이승만 체제 이후 모든 악폐를 포함하는가.

현 정부는 주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이후 악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수구세력으로부터 “공정성이 없다” “정치보복” 따위의 비판이 나온다. 이런 한계를 뛰어넘어 김대중·노무현 정권하에서 이뤄진 악폐들을 적폐에 포함시켜 청산대상으로 삼을 때, 그리고 이렇게 자기 자신들이 지지른 악폐까지 적폐청산 대상에 올려놓을 때에만 정당성을 가지고 적폐청산을 힘 있게 추진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박정희 체제의 적폐들을 과감하게 청산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보도연맹 사건이나 4·3 제주항쟁 등 이승만 정권하에서 저질러진 흉악한 범죄적 악폐들을 청산하는 문제도 의제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정부들까지 저지른 악폐라고 하면 무엇이 있을까. 가장 첫 번째가 노동탄압이다. 노동탄압은 박정희 일당이 군사쿠데타로 나라의 틀을 새로 짤 때 가장 우선적으로 탄압한 대상이었다. 다른 사회단체는 잠시 동안 활동정지 이후 곧 활동을 회복시켰지만 노동조합에 대해서만은 기존 노동조합을 해체하고 중앙정보부가 밀봉교육을 통해 하향식으로 완전히 재조직했다. 그것이 중정이 통제하는 관제어용 노총이었고, 그로 인한 노동자의 완전한 무권리였다. 이것이 유신체제로 이어졌고, 이후 전두환의 국보위 입법회의 노동법 개악과 안기부의 관계기관노동대책회의로 이어졌다. 이런 노동탄압 법·제도·관행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아래서도, 비록 완화되기는 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정리해고·비정규직이 제도화됐고, 이에 저항하는 단체행동을 공권력이 폭력적으로 탄압했다(현대·대우자동차 구조조정 예에서 보듯이).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권 등장으로 퍄쇼적 노동탄압이 부활했다.

지금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산하에 적폐청산 TF팀이 가동 중이다. 위원회는 제도개혁에 앞서 적폐청산에 주력하겠다고 한다. 적폐청산 TF팀은 13개 과제를 내놓았다. 그런데 노동탄압 관련 내용은 하나도 없다. 반공을 명분으로 한 국정원 악폐는 크게 세 가지다. 즉 노동(운동) 탄압과 진보·변혁운동 탄압, 야당 탄압이다. 그런데 지금 국정원의 적폐청산은 너무나 정파적으로 야당 탄압에 집중돼 있다.

청산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 적폐는 친미주의다. 필자가 본란 4월24일자 칼럼에서 한반도 핵전쟁 위기가 현존함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지금 온 세계 시선이 한반도 핵전쟁 위기에 쏠려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 달 전에 한반도 핵전쟁 위기를 주요 기사로 다뤘는데, 이번 주에는 표지사진과 톱기사로 다뤘다. 이 잡지는 초국적 금융자본 대변지임에도 한반도 핵전쟁 위기를 악화시키지 마라고 미국 트럼프 정권에 촉구하고 있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나 자칭 진보언론들이 이 문제에 대해 실효성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양비론자들이다. 북측은 비핵화하고, 미국측은 전쟁 이외 수단을 구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측은 비핵화할 의사가 전혀 없고, 미 제국주의는 세계지배를 위해 전쟁을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 유고슬라비아·아프가니스탄·이라크·리비아·시리아 등에서 연이어 이런 사실이 확인됐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금 한반도에서뿐 아니라 중남미의 베네수엘라 반제 사회주의 지향 정권에 대해서도 ‘군사적 옵션’을 쓰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 문제는 '친미주의'라는 적폐에서 벗어나야만 해법을 찾을 수 있다. 80년대 대학생들이 미 문화원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을 때 고 김대중 대통령은 현장에 달려가 '비반미'를 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촉구했다. 그 '비반미'로 집권을 하고 6·15 공동선언도 했지만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은 오지 않았다. 반면 80년대 반미를 외쳤던 학생운동 지도자들은 대거 자유주의 야당에 들어가 출세를 했고, 김대중 노선에 따라 비반미, 즉 친미를 하고 있다. 진보언론을 자처하는 유수의 온·오프라인 매체들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전쟁위기는 근본적으로는 미 제국주의의 한반도 분할지배에서 비롯됐다. 그 다음으로는 구소련이 무너지고 세계적으로 냉전질서가 해체되는 속에서도 한반도에서 냉전을 계속한 미 제국주의의 지배전략에서 비롯됐다. 러시아와 중국은 남한과 수교하는데,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한 것이다. 따라서 이 위기의 원인제공자는 명백히 미국이다. 그러므로 양비론을 펴는 비반미, 다시 말해 '친미'는 반드시 그리고 시급히 청산해야 할 중요 적폐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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