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한국지엠 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에는 산업은행 내부 보고서가 발단이다. 언론들은 산업은행 보고서를 근거로 지엠 본사의 경영전략 변화, 한국지엠의 재무적 위기, 산업은행의 자산매각 거부권 상실 등의 이유로 한국지엠이 자본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현재 지엠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엠 본사는 최근 몇 년간 1980년대 이후 가장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지엠은 세계적으로 1천만대를 팔았고 매출 170조원에 순이익 10조원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2015년부터 순이익이 급증했다. 지엠의 투자자본수익률(ROIC)은 8%로 도요타 5%, 폭스바겐 4%보다 높다.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수시장 회복과 중국 판매량 증가, 유럽·남미·아시아·아프리카 등의 공장을 구조조정한 것이 수익률 향상에 도움이 됐다.

이에 반해 한국지엠은 올해와 지난해 최악의 해를 보내는 중이다. 생산량과 매출은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고, 몇 년간 대규모 적자로 올해 완전자본잠식이 예상된다. 한국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글로벌 생산조정으로 생산 차종이 별로 없는 데다, 고질적인 저가 판매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은 생산의 80% 이상을 글로벌 지엠 네트워크를 통해 판매하고, 부품의 상당수도 글로벌 구매망을 통해 매입한다. 이런 이유로 한국지엠의 생산과 판매가격은 한국지엠이 아니라 사실상 디트로이트 본사에서 결정한다. 한국지엠의 손익 역시 결과적으로 본사의 전략적 결정에 따른다.

그렇다면 지엠 본사는 왜 한국지엠을 내치고 있는가. 현 상황을 이해하려면 지엠을 역사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지난 100년간 지엠은 120여개 공장을 짓거나 합병했다. 1910~1940년대에는 관세회피 목적으로 조립공장(CKD)을 유럽·남미에 건설했고, 1950~1970년대에는 아시아와 남미 신흥국에 공장을 건설했다. 한국에 지엠이 처음 들어온 것도 이때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는 세계적 불황과 국제 경쟁 때문에 세계 공장들을 구조조정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아예 제조보다 금융에 주력하며, 기업사냥과 부동산 투기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와중에 파산까지 했다. 지엠이 1980년대 이래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계적으로 폐쇄한 공장이 90여개에 이른다.

한국지엠은 지엠 역사에서 매우 이질적 공장이다. 지엠은 제조에 가장 관심이 없었던 시기에 대우자동차를 인수했다. 지엠은 주로 판매처에 생산기지를 두는데, 한국지엠은 이례적으로 수출 전용 생산기지로 운영됐다. 역설적이지만 지엠 본사가 제조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생산능력이 뛰어났던 대우차 공장이 오히려 값어치가 상대적으로 컸던 것이다. 하지만 지엠의 금융화 전략이 파탄 나고, 2010년부터 다시 제조 중심 기업으로 되돌아오면서 한국지엠의 역할이 조정됐다. 지엠은 2010년부터 한국에서 생산하던 차종들을 현지화하거나 북미 공장으로 가져갔다. 또한 플랫폼을 통합하며 한국지엠의 독자 모델들을 없앴다.

요컨대 한국지엠의 위기는 한국지엠의 생산성·비용경쟁력 탓이 아니라 글로벌 지엠이 변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지난 100년간 세계경제 변화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공장들을 짓고 폐쇄하는 것이 일상인 기업이 바로 지엠이다.

글로벌 기업의 원조인 지엠은 세계 각국 정부들을 협박하는 노하우가 상당하다. 최근 예만 봐도 2009~2010년 공장을 유지하려면 지원금을 내놓으라고 독일·영국·스페인·벨기에 정부를 협박했다. 지난해에는 캐나다 오샤와 공장 폐쇄를 발표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에게 지원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올해 초 지엠은 앞으로 수년간 고급세단·SUV·크로스오버·픽업트럭 등 돈 되는 차종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 전략으로 전기차 개발에 매진하고, 중국 합작법인이 기술을 현지화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한국지엠은 비핵심 사업인 중소형 세단 생산을 계속하며, 중국에 대한 기술지원을 더 늘릴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지엠-상하이 합작법인이 대주주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생산직 정년퇴직 인원이 앞으로 많아지니, 상황이 받쳐 준다면 부드러운 다운사이징 구조조정도 가능할 것이다.

조만간 지엠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묻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노조 탓을 해 댈 것이다. 지엠은 입만 열면 한국의 생산비 인상을 탓하지만, 헐값으로 인수한 생산설비의 효용을 생각해 보면 인건비 증가분은 그다지 큰 부담이 아니다. 이 세상에 4천억원을 투자해 15년간 2천만대 가까이 수출을 할 수 있는 자동차 공장이 어디 있겠는가. 한국 말고 없다. 별다른 투자 없이 15년간 충분히 대우차 설비를 써먹어서 이제 마음이 오락가락한다는 것이 그들의 솔직한 속내다.

이런 이유로 해결책은 뾰족한 게 없다. 단번에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해외 사례를 보면 급할수록 정부와 노조가 악수를 두는 경우가 많다. 두 가지 방안을 긴 호홉으로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외국인 투자기업이 고용과 공급사슬에 미치는 영향을 총괄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일자리위원회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외투기업 고용특위를 두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지엠 문제는 한 사업장 문제가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외국기업에 매각된 한국 기업들 전반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다.

둘째,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가 이 문제 해결주체를 산업과 지역 전체로 확장하는 것이다. 대기업 노동조합은 모든 문제를 사업장 단체협약 안에서 풀려는 경향이 있는데, 지엠 본사와 교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한 현재 한국지엠의 기업 교섭은 크게 의미가 없다. 이번 기회에 기업노조의 자원을 사회적 교섭, 사회적 운동에 투자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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