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지자체를 비롯한 공공부문에서는 여전히 비정규직들이 계약만료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경기도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여러 도서관에서 계약만료일을 앞두고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이 잇따라 해고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 대표적이다.<본지 8월4일자 2면 '지자체 정규직 전환 대상자 계약해지 잇따라' 참조> 일부 지자체가 장기근속한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막기 위해 계약만료를 통보하면서 '비정규직 제로'가 아니라 전환 대상자 싹을 자르는 '그라운드 제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 비정규직 인력운영은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듯' 한다. 인력운영 원칙이 없으니 비정규직은 파리 목숨이다.

“오래 일한 비정규직 채용하면 감사에 걸린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운영하는 청소년문화의집에서 2007년 3월1일부터 9년10개월 동안 청소년 지도사로 일했다는 A(36)씨가 그렇다. 7일 <매일노동뉴스>가 A씨의 말을 종합해 보면 해운대구청은 원칙 없는 비정규직 운영의 전형을 보여 준다.

A씨의 말은 이렇다. “비정규직이었지만 9년 동안 매년 자연스럽게 고용이 연장돼 왔어요. 입사하고 나서 2015년 말까지는 재계약을 이유로 따로 지원서를 낼 필요도 없었고, 당연히 채용되는 걸로 알았죠. 이 일을 ‘내 살림이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계약만료를 당하고 나니 당황스럽습니다.”

해운대구청은 채용규정을 개편하면서 2015년 말부터 A씨에게 1년 단위로 지원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8년 넘게 일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채용규정 개편은 구청이 운영하는 청소년문화의집이 두 개로 늘어나면서 바뀌었다고 한다. A씨는 “해운대구가 운영하는 청소년문화의 집이 2015년 말쯤 하나 더 개관했다”며 “당시 구청 직원은 '새로 개관한 시설에 투입될 인원을 뽑으면서 채용체계를 달리한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고서 1년 계약기간이 끝난 지난해 말 결국 사달이 났다. A씨가 2017년 채용 지원서를 내러 갔을 때 구청 관계자는 "굳이 원서를 낼 필요가 없다. 99% 안 될 것이다. A씨는 오래 일해 왔는데, 그러면 감사에 걸린다"는 말을 했다. A씨는 지원서를 냈지만 면접조차 보지 못했다. 구청 직원 말 그대로다. 청소년문화의집에서 10년 넘게 일했던 일용직 직원도 A씨와 함께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다.

“내 일이라 여겨 추가수당도 안 받았는데”

A씨 주장에 따르면 그는 입사한 뒤 2015년까지 한 번도 연차를 쓴 적이 없다. 야근·주말근무를 해도 추가수당을 받지 못했다. 구청이 고용체계 개편을 한 뒤인 2016년에 와서야 연차를 사용했다. 청소년문화의집에서 일하는 동안 두 아이를 낳았지만 육아휴직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다만 임신 때마다 3개월의 출산휴가를 받았을 뿐이다. A씨는 "출산휴가 기간에도 수시로 일을 했다"며 "심지어 지난해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는 출산 당일에도 일을 했다"고 했다. A씨는 “제왕절개 수술을 한 뒤 병원 컴퓨터 앞에 앉아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출산 전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기로 했는데, 예상보다 출산이 빨랐어요. 2017년에도 당연히 근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임감이 있었죠. 그러니까 힘들어도 거부하지 않고 일을 한 겁니다.” A씨 설명이다.

A씨는 올해 3월29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부산지노위는 최근 A씨 손을 들어줬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라 2년 이상 근무한 A씨가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에 해당된다는 결정이다. A씨가 정부 복지정책·실업대책에 의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우처럼 기간제법 사용기간 제한 예외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해운대구청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A씨는 “9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한 보상이 고작 해고통보라니, 그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A씨는 “정부에서는 비정규직 제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현장에서는 너무 먼 이야기인 것 같다”며 “여성 비정규직들이 출산 이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보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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