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 6급 공무원이 지난해 4월부터 신규임용된 다수 여성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개인적인 만남을 요구하거나 신체접촉·성적언행을 하는 등 지속적인 성폭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 사실을 접수받은 조달청이 석연찮은 이유로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에 대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 은폐 논란이 일고 있다. 심지어 피해자를 대신해 문제를 제기한 노조를 탄압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신입 직원 대상 성희롱·성추행 지속 

24일 국가공무원노조에 따르면 노조 조달청지부는 지난 3월 6급 공무원 김아무개씨에게 상습적으로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는 제보를 받고 성폭력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피해자들과 10여명의 증언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달 19일 발표한 진상조사보고서 내용은 충격적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씨는 지난해 4월 신규임용돼 자신과 같은 부서에 배치된 A씨에게 퇴근 시간 후에도 업무와 관련없는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A씨가 "이제 밤에는 그만 전화하라"거나 "남자친구와 통화해야 하니 전화를 끊어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김씨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회식자리에는 "옆에 앉으라"고 강요하거나 "신입직원은 높은 분들에게 아부를 해야 한다"며 상급자에게 술을 따르라고 지시했다. 심지어 "다크서클이 있다"며 A씨의 눈밑을 어루만진 김씨는 "너도 좋은가 보다. 좋아서 안 피한 거야"라며 마치 A씨가 추행을 용인하는 것처럼 얘기했다.

다른 부서 직원도 타깃이 됐다. B씨는 술자리 후 김씨가 "속이 안 좋다"며 집까지 데려다 달라는 요청에 별다른 의심 없이 김씨를 데려다줬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김씨가 갑자기 방문을 잠그고 못 나가게 하는 바람에 도망치다시피 집을 빠져나왔다.

C씨는 김씨에게 지속적으로 만남을 요구받았다. 이성 간 만남을 요구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에는 답장하지 않는 방법으로 대응하지 않았지만, 김씨가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인식했다는 점에 수치심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진상조사특별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성추행이나 성희롱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자진신고해 처분을 받으라는 권유에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심지어 "조달청을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며 협박성 발언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달청지부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김씨가 과거 지방청에 근무한 2003~2005년 사이에 특정 여성에게 '좋아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지속적으로 괴롭힌 적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며 "추가 사례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달청 "피해자 인적사항 없는데 가해자 어떻게 처벌하나"

문제는 이 같은 진상보고서를 받은 조달청 감사담당관실의 태도다. 지난달 19일 노조 임원 3명이 피해자를 대리해 감사담당관실에 신고한 당일, 가해자로 지목된 김씨의 상급자와 관리자들이 피해자들에 연락을 취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압력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부가 "감사사건은 비밀유지가 최우선인데 사건접수 내용이 유출됐거나 조직적으로 전달된 게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감사실은 지부가 제출한 진상보고서에 피해자들의 인적사항이 적힌 진술서와 신고서·문답서·전문가 상담서 제출 등을 요구했다. 노조의 진상조사보고서에 피해자 진술이 있는데도, 인적사항이 없고 서명이 없기 때문에 진술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담당관실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규정상 요건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징계하지 못한다"며 "노조에 피해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 적힌 진술서를 가져오라고 했는데도 (노조가) 가져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부 관계자는 "감사실에 신고를 접수한 당일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노출되면서 피해자들이 고통받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 인적사항을 어떻게 믿고 제출하겠냐"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피해자 진술서·확인서, 다른 직원들의 증언도 있는 만큼 진상조사보고서를 신뢰하고 가해자에 대한 빠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조달청이 성폭력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피해자를 대리한 지부 임원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조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감사부서에 대리인으로 조사에 응했던 노조를 탄압하는 등 부당노동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출장 중이던 지부 총무국장의 캐비닛이 열려 있었다는 이유로 벌당직 2회를 처분하는 등 복무점검을 명목으로 무리한 협박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감사관실은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전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공직점검에서 보안실태 점검 중 계약서류가 들어 있는 캐비닛이 열려 있었던 것"이라며 "정당한 점검이지, 노조탄압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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