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과로사로 추정되는 집배노동자들의 사망이 잇따르자 우정사업본부는 지난달 19일 ‘집배원 근로시간단축 대책’을 발표했다. 집배원들은 법정근로시간보다 적게 일할 뿐 아니라, 실제 필요한 인원보다 현재 인원이 더 많다는 것이 우정사업본부의 결론이었다. 우정사업본부 조사는 노동자운동연구소 조사 결과와 차이가 커 논란이 됐다.

그런 가운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집배원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우정사업본부 조사 결과와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치는 오히려 노동자운동연구소와 비슷했다. 우정사업본부 조사의 신뢰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게 됐다. 노사가 공동으로 객관적인 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연평균 노동시간 2천531시간 vs 2천869시간

전국우정노조와 변재일·김영주·김태년·한정애·김경협·이용득·어기구·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석춘·문진국·임이자·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이정미·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2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집배원 과로사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달 1~10일 전국 집배노동자 2천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집배원들의 하루평균 노동시간은 10.9시간이었다. 지난달 우정사업본부 조사(2016년 말 기준) 10.1시간보다 0.8시간 많았다. 1주평균 노동시간은 55.2시간으로 우정사업본부 조사 결과(48.7시간) 보다 길었고, 노동자운동연구소 조사(55.9시간)와 비슷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조사는 2014년 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진행됐다.

월평균 노동시간과 연평균 노동시간도 마찬가지였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집배원들은 월평균 239.1시간을 일했지만, 우정사업본부 조사에서는 201.9시간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조사는 240.7시간으로 노동연구원 조사와 차이가 거의 없었다. 연평균 노동시간은 노동연구원 조사가 2천869.4시간으로 우정사업본부 조사(2천531시간)보다 300시간 이상 길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조사는 2천888.5시간이었다.


집배원들의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도 올해 5월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다. 충청지방우정청이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4개 우체국만 면담조사를 한 것이다. 4개 우체국의 월평균 초과근로시간은 57시간이었다. 특정지역 우체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지만 우정사업본부 조사(50.2시간)보다 훨씬 많았고, 노동연구원 조사(65.8시간)보다 적었다.

집배원 배달물량·필요인력과 관련해서도 우정사업본부와 노동연구원 조사 결과에 차이가 컸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집배원 1인당 하루 배달물량은 982통이었지만 노동연구원 조사에서는 1천151.4건으로 집계됐다. 우정사업본부는 “최근 5년간 우편물량이 10억통 감소하고 집배인력은 624명 늘었다”며 대규모 인력충원 필요성을 부정하고 있다. 반면 노동연구원 조사에서 집배원들의 94.8%는 “인력충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집배원 74% “우체국 시스템 못 믿어”
전문가들 “노사 공동 실태조사해야”


조사 결과에 차이가 나는 것을 두고 우정사업본부 조사 방식이 장시간 노동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는 노동자들에게 설문조사를 방식으로 산출했다. 조사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전국 지역과 나이대를 고려해 대상자를 선정했고, 노동시간의 경우 10분 단위까지 쪼개서 질문했다. 노동자운동연구소는 조사 대상이 183명에 불과하지만, 노동자들의 근무시간 내역서를 분석했다. 우정사업본부의 경우 전체 집배원들의 복무기록을 조사해 분석했다.

이정희 부연구위원은 “우리 조사가 설문방식이기 때문에 100%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우정사업본부를 제외한 결과가 유사하다는 것은 집배원들의 노동시간 현실에 대해 궁금증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설문조사보다는 객관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김현군 우편집배과장은 “우리 조사는 설문조사가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집배원들이 실제 자신이 근무한 시간만큼 복무기록을 작성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토론회에서 구로우체국 집배원이라고 밝힌 노동자는 “우리 우체국의 경우 출근시간은 늦춰서, 퇴근시간은 앞당겨서 기록하도록 지시하고 있다”며 “우리 우체국만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실제 노동연구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체국에서 정한 회사 체류시간은 10.4시간이었지만, 실제 체류시간은 11.5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기훈 기자


우정사업본부의 물량산출 시스템도 집배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말 구축한 집배부하량 산출시스템을 이용해 집배원 업무량과 적정인력을 계산하고 있다. 집배원들의 배달물량과 이동거리 등 총 190개의 집배업무 단위요소를 업무별 표준시간으로 각각 계산한 뒤 합산하는 방식이다.

우정사업본부는 노조와 합의한 객관적인 방식이라고 주장하지만, 우정노조는 “합의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연구원 조사에서는 집배원들의 73.8%는 “집배부하량 시스템에서 업무량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정희 부연구위원은 “우정사업본부 조사와 다른 기관 조사 결과에 차이가 큰 만큼 노사가 공동으로 제대로 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실장은 “우정사업본부가 객관성 없는 조사 결과를 가지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고 있다”며 “국회 차원에서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 사회를 본 이창원 한성대 교수(행정학)는 “토론을 지켜보면서 ‘좋은 정책은 올바른 데이터에서 나온다’는 말을 떠 올린다”며 “팩트체크를 통해 상이점을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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