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박원순 서울시장의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각별합니다. 서울 시정을 통해 구체적 정책으로 실천하는 의지와 노력도 남다릅니다. 2015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해 서울시와 산하 11개 투자·출연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1단계 신분 안정을 시키더니,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2단계 계획 발표를 통해 무기계약직 2천422명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합니다. 또 서울시는 2019년까지 서울형 생활임금을 1만원대로 올려 공무원이 아닌 기간제·공무직과 투자·출연기관 노동자, 민간위탁 노동자 등 적용 대상 1만5천여명의 생활을 안정시킬 계획이랍니다.

발표를 하면서 박 시장은 “노동은 시민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돼 있기에, 서울시는 노동존중특별시 종합정책을 통해 시민 삶 곳곳에 존재하는 각종 불합리한 요소를 제거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며, “같은 일을 하면서도 각종 차별을 받아 온 비정규직의 실질적인 정규직화를 통해 고용구조를 바로잡는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모델을 정립해 나가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며칠 뒤 발표된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과제’의 노동과 일자리 부분에서도 잘 나타났지만, 박 시장은 문재인의 개혁정책에 선도적 역할을 하며 앞장서 끌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로소 인간중심 노동존중의 사회가 열리는 것 같아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큰 기대를 가지며 고마운 마음도 함께 갖습니다.

특히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전국 최초로 (가칭)‘전태일 노동복합시설’을 내년 4월 문 연다고 발표했습니다. 전태일을 따르며 전태일 정신으로 살아가려는 우리 노동자들은 그 구체적 공간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합니다. 평화시장 앞 전태일다리가 있는 청계천 수표교 인근에 지상 1~5층 건물(총 면적 2천52제곱미터)에 들어서는 이 시설은, 전태일의 유품 등을 전시하는 전태일 기념관과 함께 이동노동자 쉼터, 비정규 노동자 건강검진센터를 포함해 노동인권센터, 청년아르바이트권리보호센터 등 취약 노동자를 위한 공간이 함께 마련될 예정이어서 더욱 기대가 큽니다. 그러면서 모처럼 마음을 내어 결단하고 만드는 이 시설이 전태일을 기념하며 전태일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살아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몇 가지 생각을 보탭니다.

우선 노동자가 주체가 돼야 합니다. 구경꾼이 되거나 대상화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양대 노총이나 비정규직·청년노동자 등 사회 각계가 참여하는 추진위원회가 구성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전태일 당시의 '시다'처럼 이 시대의 가장 어려운 노동자에게 필요한, 그들이 주인인 시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둘째는 전태일 기념관도 단순히 당시 상황을 재현하거나 유품 등을 전시하고 보여 주며 해설하는 차원을 넘어 찾아온 분들이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는 입체적 공간이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 다락방 형태의 작은 공장이나 전태일이 꿈꿨던 모범업소 등을 재현해 찾아온 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하고, 공연장도 만들어 노동관련 문화예술 행위가 상시적으로 이뤄지게 해야 합니다. 아울러 이런 것들이 참여형 교육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연장·체험 시설·교육장은 꼭 필요합니다.

셋째는 기념관과 전태일 다리, 분신항거 자리와의 연결입니다. 기념관에서 다리까지의 청계천 양쪽 도로는 전태일길로 이름 붙여야 하고, 설치미술이나 기념물, 편의시설 등으로 알맞게 치장해야 합니다. 전태일다리에 이미 만들어 세워 놓은 동상과 설치물, 그리고 깔려 있는 동판 등과도 조화를 이뤄야겠지요. 그래서 전태일이 일하던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청계천 일대가 체험도 할 수 있고 문화행사 등에도 참여하는, 관광명소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전태일은 1970년 최악의 노동현실을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과 함께 불사름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시작했고, 비로소 민주노동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현충일 추념사에서 그때의 그 열악한 조건에서 온몸을 바쳐 일했던 노동자들이 우리나라를 만든 진정한 애국자라고 이름 불러 줬지만, 사실 지난겨울의 그 장엄한 촛불대혁명도 노동자가 주도세력이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전태일의 이름으로 전태일 정신으로 오늘을 사는 노동자가 이 세상의 주인입니다. 우리 모두가 전태일입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