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일 전국택배연대노조 정책국장

지난 2004년 과당경쟁과 운송료 덤핑 문제 등 화물운송시장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화물수급조절제는 화물노동자들의 생존권 보호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30%에 달하는 택배노동자는 화물수급조절제로 인해 단속 위협에 시달리거나 실제로 단속돼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근무 형태나 운송료 결정체계에서 화물과 차이가 있는 택배업종에 화물수급조절제가 기계적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화물수급조절제 취지는 공급이 많으면(화물차 증차) 가격(운송료)이 떨어지기에, 화물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증차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수요공급 법칙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화물노동자 운송료 보장’을 위한 화물수급조절제가 시행된 이후에도 택배노동자 배송 수수료는 2007년 816원, 2013년 799원, 2016년 771원으로 하락폭을 유지하고 있다. 택배노동자의 배송 수수료와 밀접히 연관돼 있는 택배운임도 2004년 3천150원, 2010년 2천504원, 2016년 2천318원으로 떨어지고 있다. 택배운임은 택배노동자와 무관하게 택배회사와 거래처의 결정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급 규제가 풀리게 되면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공급이 과잉돼서) 임금이 하락할 수 있다”는 주장은 택배 현실과 맞지 않다. 이처럼 택배와 맞지 않는 화물수급조절제로 아무 잘못 없는 택배노동자들이 범법자로 내몰리고 있다. 택배물량이 2001년 2억300만개에서 2016년 20억4천800만개로 10.1배 성장함에 따라 택배업계에 종사하는 택배노동자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차량(번호판)은 묶여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당시 택배업체 배송차량 28.6%(1만3천11대)가 ‘자가용 번호판’을 달고 ‘불법운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고, 올해 실제로 단속된 지역도 안산·파주·인천 계양·부천·원주에 이른다. 전국택배연대노조에 제보된 지역만 집계했기 때문에 단속 지역은 전국적으로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속을 하는 정부 역시 수급조절제로 인한 택배 현장의 폐해를 알고 있다. 국토부는 2012년부터 꾸준히 택배차량 증차를 허용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택배용 화물차(‘배’ 번호판)에 대해서 수급조절제를 폐지하고 신규 허가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택배차량의 무한증차를 허용하려고 했던 정부가 증차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단속에 나서고 있다. 스스로 고치려고 했던 잘못된 법·제도를 근거로 처벌하고 있으니, ‘배’ 번호판이 없는 택배노동자는 정부가 증차해 줄 때까지 택배를 그만두란 말인가.

이런 문제가 발생한 근본 원인은 시장도 다르고 운임·수수료 결정 방식도 다른 화물과 택배를 같은 범주에 놓고 화물수급조절제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부에 화물수급조절제는 취지를 살려 유지하되, 택배는 증차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정부는 "열심히 일한 대가로 벌과금이라는 폭탄을 맞게 됐다. 희망도 없고 미래도 안 보이는 택배,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다"는 택배노동자들의 절절한 호소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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