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의 사내하청 노동자 사용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2심 판결이 나온 가운데 경영계가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노동계는 "불법을 눈감아 달라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금속노조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은 불법고용에 대한 반성 없이 파견을 무한정 확대해 달라는 사용자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조속히 불법파견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에 따르면 한국경총과 자동차산업협회·자동차산업협동조합은 이달 4일 대법원에 사내하청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냈다. 자동차산업협회에는 국내 5개 완성차 회사가 소속돼 있다. 재판 당사자인 현대·기아차가 탄원서 주체로 나선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들은 탄원서에서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유지된다면, 사실상 제조업에서의 도급계약은 금지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협력업체 근로자들마저 원청사업자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면, 대기업과 수많은 협력사는 물류비용과 제조단가 급증으로 경쟁력에 큰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유홍선 노조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장과 김수억 노조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장은 "비정규직을 확대해 고용형태를 악화시키고 노동자를 착취해 이윤을 증대했던 현대·기아차가 불법행위를 반성하지는 않고 탄원서까지 제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기업의 주장대로라면 모든 국민을 비정규직으로 전략시키고 마음대로 해고를 할 수 있어야 제조업 경쟁력이 살아난다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경총 등은 대법원을 압박해 어떻게든 심리불속행 판결을 막아 보려는 얕은 술수를 부리고 있다"며 "현대·기아차는 억지 탄원서를 낼 것이 아니라 20년이 돼 가는 불법파견 범죄행위를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총이 탄원서를 낸 것은 현대·기아차 대법원 판결이 임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법리해석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심리 없이 원심을 확정하는 '심리불속행 기각'을 대법원이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법원이 심리불속행을 결정할 경우 보통 사건을 접수한 지 4개월 안에 선고를 한다. 현대차는 29일, 기아차는 22일이 4개월이 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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