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 자치기구인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 모델이 주목을 받고 있다.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는 미조직 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고 정부 개입 없이 노사 간 자율적인 사회적 대화를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노총·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민생경제와 사회적합의 포럼·사회적 대타협 추진 국회의원 모임은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3세미나실에서 ‘외국의 사례로 본 한국형 노동회의소의 필요성과 도입방향’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국제심포지엄에는 발렌틴 베들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 국제본부장과 마르쿠스 스트로마이어 오스트리아노총 국제본부장이 참석했다.<본지 7월18일자 10-11면 ‘90% 미조직 노동자 이해 노동회의소가 대변할 수 있다’ 인터뷰 기사 참조>

“노조와 노동회의소는 역할 분담·협력 관계”

이날 주제발표를 한 발렌틴 베들 본부장은 “한국에서 자주 질문받는 것이 노조와 노동회의소가 경쟁관계가 아니냐는 것”이라며 “기능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역할 분담과 협력 관계를 가져가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임금·단체협상과 직장평의회 운영·지원, 기업·산별 이해관계 대변 역할을 한다. 선택가입제다. 노동회의소는 법률자문·권리보호·소비자보호, 정보 수집·제공, 국가기관 대상 이해관계 대변 역할에 중점을 둔다. 의무가입제다. 노동회의소법에 따라 소득의 0.5%를 회비로 받는다. 가입대상은 공무원을 제외한 노동자와 실업자·프리랜서·연금생활자 등으로 폭넓다.

발렌틴 베들 본부장은 "노동회의소는 노동자 자치기구"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회의소는 자치기구로서 법적으로 보장받는다”며 “노동회의소 결정에 정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노동회의소 360만 회원은 5년 단위 선거를 통해 그들을 대표하는 의원을 뽑는다. 발렌틴 베들 본부장은 “노동회의소 정책적 결정은 노조에 의해 주도된다”며 “노동회의소 의회에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이해를 대변하는 교섭단체도 존재한다”고 소개했다.

노동회의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노조다. 발렌틴 베들 본부장은 “노동회의소에서 노조는 강력한 역할을 한다”며 “이런 구조를 갖추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며 일정한 타협의 과정을 거쳐 노조와 노동회의소가 공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노조가 주도하고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자치기구”

마르쿠스 스트로마이어 본부장은 “노동회의소를 비롯한 4대 파트너기관은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있다”며 “노사 모두 정부와 정치권의 목소리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한다”고 소개했다.

오스트리아에는 '노총(단일노총)-노동회의소-경제회의소-농업회의소'가 4대 파트너기관으로 사회적 동반자관계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변호사·의사·약사 같은 직종의 종사자들도 각각 회의소를 조직하고 있다. 100% 가입한다.

그는 “오스트리아노총이 노동회의소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노동회의소가 노동자를 위한 싱크탱크로서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는 과정에서 보완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며 “노동회의소가 하는 일을 노조가 감당하려면 어마어마한 지출이 필요한데 오히려 노조는 그 돈으로 투쟁을 조직하는 등 다른 일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마르쿠스 스트로마이어 본부장은 특히 “노동회의소로 노조가 위협받거나 대체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노조는 투쟁조직으로 노동회의소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노조 조직률은 28%인 반면 단협 적용률은 무려 97%다.

"5년 안에 입법과정 거쳐 전면시행 추진해야"

이어 주제발표에 나선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5년 안에 노동회의소 입법과정과 단계적 시범사업을 거쳐 궁극적이고 전면적으로 시행되도록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최소한 20% 이상 노조

조직률이 모색되고 그 기반 위에서 노조와 노동회의소가 유기적으로 긴밀히 협력하고 보완하는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임상훈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분배의 불공정과 사회 양극화, 조직화 문제, 이해대변 제도 문제는 기존 대안으로 풀기 어렵다”며 “노조는 교섭과 협약, 노동회의소는 사회적 대화와 입법을 담당하면서 상호 협력하는 모델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용득 의원은 이날 인사말에서 “기업별노조체제의 한계와 노사관계에서 정부 영향력이 큰 우리나라에서는 오스트리아 모델을 적용하기 쉽다”며 “노동회의소를 통해 90%의 미조직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사를 대변하는 사회적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영세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할 여력조차 없다”며 “전체 노동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조직화하는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 모델이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최종태 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심포지엄에는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이상원 한국노총 비정규직연대회의 의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상자]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 모델에 국회의원들 ‘관심’
국회서 국회의원-오스트리아 초청자 환담회 열려

국회의원들도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 모델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2공용회의실에서 한국을 찾은 발렌틴 베들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 국제본부장과 마르쿠스 스트로마이어 오스트리아노총 국제본부장과 국회의원 간 환담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이용득·민병두·설훈·김경협·이원욱·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함께했다. 민병두 의원은 민생경제와 사회적합의 포럼 공동대표를, 이원욱 의원은 사회적 대타협 추진 국회의원 모임 간사를 맡고 있다. 한국노총에서는 정광호 사무처장·권재석 대외협력본부장·유정엽 정책실장이 참석했다. 이 밖에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사문걸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장이 동참했다.

이용득 의원은 환영사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사회적 대화의 주체로 노사가 나서야 한다”며 “두 본부장의 방한으로 노동회의소를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광호 사무처장은 “한국에서는 상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 노동자가 나날이 늘고 있다”며 “노동회의소가 취약노동자 보호대책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환영했다.

이날 환담회에서는 의원들의 관심과 질의가 이어졌다. 설훈 의원은 “한국은 촛불혁명으로 권위적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민주적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며 “새로운 지평으로서 노동회의소가 미조직 노동자를 어떻게 대변하고 보호할지에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김경협 의원은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는 노조 조합원을 비롯해 전체 노동자 360만명을 포괄하고 있다”며 “노조 조합원과 미조직 노동자 간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에는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했다.

마르쿠스 스트로마이어 본부장은 “노조가 노동회의소 운영진과 정책결정 단위를 주도하고 있다”며 “노동회의소는 노조 조합원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대변하는 메커니즘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오스트리아노총은 조합원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위해 협상을 한다”고 “(노조와 노동회의소가) 상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발렌틴 베들 본부장은 “노동회의소가 존재하기까지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정부와 사용자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형태라는 점”이라며 “노조가 매우 강력한 힘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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