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국면에서 ‘노동회의소’가 급부상했다. 90% 미조직 노동자를 위한 이해대변기구이자 중앙노사관계 모델로 주목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대선공약에 담았다. 하지만 노동회의소 모델은 여전히 낯설다. 미조직 노동자 권익대변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와 함께 외려 노조를 약화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는 ‘외국의 사례로 본 한국형 노동회의소의 필요성과 도입방향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와 노총 관계자가 방한했다. 노동회의소 본고장인 오스트리아에서 온 이들로부터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발렌틴 베들(Valentin Wedl·46·사진)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 국제본부장과 마르쿠스 스트로마이어(Marcus Strohmeier·45·사진) 오스트리아노총 국제본부장을 만났다. 발렌틴 베들 본부장은 2000년부터 노동회의소에서 일했다. 마르쿠스 스트로마이어 본부장은 직장평의회(종업원평의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고 2015년부터 노총에서 근무 중이다.

“한국 노동회의소 논의 소식 듣고 반가웠다”

- 한국에서 노동회의소 국제심포지엄 초청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발렌틴 베들 : 다른 나라에서 노동회의소 도입을 논의한다고 해서 기뻤다. 노동회의소에 대한 조건과 기본사항을 안내하고자 한국을 찾게 됐다.

발렌틴 베들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 국제본부장


-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를 소개한다면.

발렌틴 베들 : 노동운동을 바탕으로 1920년 설립된 기관이다. 오스트리아 민주화가 시작될 때 만들어졌다. 5년마다 자유선거를 한다. 선거에서 기본방향을 정한다. 자치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의회도 갖추고 있다. 노총에 대한 협력·지원 역할도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노동회의소 설립 요구가 처음 제기된 것은 1860년대다. 1848년 설립된 경제회의소(상공회의소)에 대응하는 취지로 사회민주당이 제기했다. 1918년 1공화국이 수립되고 사민당이 집권한 뒤 1920년 노동회의소가 설립됐다.

- 노조가 있었는데도 노동회의소를 따로 만든 이유는.

발렌틴 베들 : 1920년 당시에 노조가 있었다. 그런데 노조가 기댈 수 있는 싱크탱크가 필요했다. 사회정의를 이루는 투쟁에서 지적인 지원이 요구됐다. 전문지식을 갖춘 기관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노동회의소는 노조가 기댈 수 있는 싱크탱크”

노동회의소는 노동자에게 필요한 전문지식, 법률자문·소비자보호 같은 회원서비스, 국가기관 대상 이해관계 대변, 학술연구, 직장평의회 임직원 교육·서비스를 제공한다. 노동회의소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의무가입제다. 가입대상은 노동자와 실업자, 프리랜서, 연금생활자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다.

- 노동회의소와 노조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고 있나.

마르쿠스 스트로마이어 오스트리아노총 국제본부장


마르쿠스 스트로마이어 : 둘 사이의 역할 분담은 확실하다. 노동회의소는 노동회의소법에 근거해 그 범위를 벗어나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 노조 활동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노동회의소 운영을 노조가 주도한다.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는 중앙 단위 연방노동회의소와 9개 주의 지역노동회의소로 구성돼 있다. 전체 회원이 360만명이다. 직원은 2천600명, 간부는 840명이다. 회원은 5년마다 선거를 통해 그들을 대표할 의원을 뽑는다. 노동회의소는 이원체계로 구성돼 있다. 회원·의회·이사진·회장으로 이어지는 정책결정 체계와 사무국장·직원·전문가로 이뤄진 사무국(행정) 체계로 이뤄져 있다. 의회의 80%는 노조 추천 인사들로 구성된다.

오스트리아에서 노조는 임금·단체협상과 직장평의회 운영·지원, 기업·산별 이해관계 대변 역할을 한다. 선택가입제다. 노동회의소가 전문가그룹이라면 노총은 투쟁조직으로 볼 수 있다.

- 노동회의소 이사진과 회장, 사무국장과 직원들이 정부로부터 자유로운가. 한국에서는 고용노동부 퇴직관료나 총연맹 퇴직간부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

마르쿠스 스트로마이어 : 오스트리아에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노동회의소법은 노조에서 투표로 선출한 사람만이 이사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회의소에는 분회가 존재한다. 80%가 노조 출신이다. 노조에 의해 운영된다고 보면 된다.

발렌틴 베들 : 노동회의소는 노조와 협력해 노동자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역할을 한다. 사회적 동반자 관계다. 정부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사회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정부는 노동회의소에 개입하는 것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노조와 노동회의소 역할 구별돼 있다”

- 한국에서 노동회의소에 관심을 두는 대목은 90%의 미조직 노동자를 위한 이해대변기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여부다.

마르쿠스 스트로마이어 : 노동회의소가 도입되면 90%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충분히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법적인 근거를 확실히 만들어야 한다.

발렌틴 베들 : 노동회의소는 노조가 강해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렇다고 노동회의소가 단결권 행사를 대체하는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단결권 행사를 방해하지도 않지만 대체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노동회의소와 별개로 노조가 강화시켜야 할 부분이다.

-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는 회원으로부터 소득의 0.5%를 회비로 받고 있다. 정부로부터 완전한 독립이 가능한가.

발렌틴 베들 : 노동회의소는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있다. 회비 0.5%는 법에 명시돼 있다. 노동회의소도 정부에서 다양한 사업 지원을 받는다. 정부 도움을 많이 받을수록 영향을 받는 게 사실이다. 기본 운영방침에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명확히 규정한다면 그런 우려를 줄일 수 있다. 노동회의소의 독립성은 헌법에도 명시돼 있다.

“노조 주도로 독립적인 노동회의소 만들어야”

- 오스트리아에서는 '노총-노동회의소-경제회의소-농업회의소'가 4대 파트너기관으로 작동한다. 사회적 대화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마르쿠스 스트로마이어 : 정부는 사회적 대화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 예외는 공무원 문제 같은 정부가 사용자인 경우에만 해당한다. 어느 파트너기관도 정부 개입을 원하지 않는다. 사회적 대화는 자발적으로 이뤄진다.

- 한국은 오스트리아와 환경이 다르다. 낮은 노조조직률·낮은 단체협약 적용률·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미비준 등 노조활동이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회의소 실험은 해 볼 만한 것인가. 노동회의소가 노조조직률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나.

마르쿠스 스트로마이어 : 지금의 한국 상황은 1860년대 오스트리아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 당시 사민당이 노동회의소를 도입하자고 했다. 노조가 너무 약하니까 뒷받침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노조는 지금도 약한데 노동회의소가 도입되면 힘이 더 약화된다며 반대했다. 나중에 노조 힘이 강해지고 노동회의소를 통제할 수 있을 때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1920년 노조는 스스로 힘이 강해졌다고 판단하고는 찬성으로 돌아섰다.

노동회의소가 노조조직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노동회의소가 노조를 대체할 수는 없다. 노동회의소를 기관화된 노조로 봐서는 안 된다.

발렌틴 베들 : 긍정적으로 본다. 노동회의소는 정부로부터 독립한 기관이어야 한다. 정부가 차는 공이 돼서는 안 된다. 이런 조건이 갖춰진다는 전제하에서 노동회의소가 노조를 강화하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 모델을 도입하고자 한다면 이런 모든 과정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