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하청노동자 대량해고 저지를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선소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 국정감사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제정남 기자

조선소 하청노조 조합원들의 잇단 재취업 실패를 계기로 불거진 조선소 블랙리스트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될 조짐이다. 올해 4월11일 울산 동구 염포산터널 고가다리 교각에 오른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업체 해고노동자 2명의 고공농성이 19일이면 100일째를 맞는다. 시민·사회단체가 이들을 응원하는 희망버스를 준비 중인 가운데 노동계는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감사 성사에 주력할 방침이다.

조선하청노동자 대량해고저지를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조를 파괴하고 노조할 권리를 박탈하는 데 이용되는 조선소 블랙리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 국정감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청노동자 대량 구조조정
금속노조 간부 80% 해고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조선소 노동자들이 2년째 고용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이달 2일 발표한 고용형태공시 결과에 의하면 올해 3월 기준으로 지난 1년 새 조선업종 노동자가 19만7천명에서 13만명으로 6만7천명 감소했다. 정규직은 6만2천명에서 5만명으로 1만2천명, 비정규직은 13만5천명에서 8만명으로 5만5천명이나 줄어들었다. 하청노동자들이 구조조정 파도에 정면으로 맞닥뜨렸다는 얘기다.

현대중공업 사정도 다르지 않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에 따르면 2014년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현대중공업에서만 2만713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눈에 띄는 것은 지회 조합원들의 해고 상황이다.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지회 조합원 13명이 지난해 7월부터 최근까지 해고됐다. 지회 전체 간부의 80%가 일자리에서 내몰렸다.

4월11일 고공농성을 시작한 전영수 지회 조직부장과 이성호 대의원도 해고자다. 현대미포조선 ㄷ하청업체에 다니던 두 사람은 업체가 폐업을 준비하자 채용공고를 낸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 하청업체 수십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채용에 번번이 탈락한 이들은 "현대중공업 원청이 지회 간부 재취업을 막는 방식으로 노조를 파괴하고 있다"고 반발하며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하청노동자 재취업을 막는 블랙리스트 폐지와 재방방지대책을 원청인 현대중공업에 요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측은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고 만든 사실도 없다"며 "조선업 불황으로 하청업체 일자리가 줄어들다 보니 (블랙리스트가) 언급되는 것 같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조선소 블랙리스트 논란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해 초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던 물량팀 노동자가 삼성중공업 하청업체에 취업하려다 거부당했다. 조선소들이 블랙리스트를 공유하고 있다는 의혹은 현장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치부된다.

"블랙리스트는 생존권과 직결"
"원·하청 공동대응 위해 하청노조 절실"


고공농성 중인 전영수 조직부장은 "구조조정 고용위기 속에서 하청노동자들이 버틸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노조밖에 없지만 블랙리스트로 인해 노조가입을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블랙리스트 폐지는 재취업을 거부당하고 있는 해고자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라고 토로했다. 원청 정규직노조인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도 최근 수년간 하청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하고 있다. 지회 관계자는 "원청이 파업을 해도 하청업체가 일을 하면서 빈자리를 메워 버리기 때문에 파업효과가 상쇄되고 파업동력도 생기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하청노동자 조직화가 쉽지 않아 원·하청 노조가 힘을 모아 고용위기 상황에 공동대처하는 투쟁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블랙리스트 문제를 쟁점으로 만들기 위해 희망버스와 국회 국정감사를 추진한다. 블랙리스트를 운영한다고 의심되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요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지회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2곳과 원청을 불법파견 혐의로 조만간 노동부에 고발한다. 원청 정규직이 해야 할 용접·취부 등 작업에 하청노동자들을 상시적으로 사용한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업체에서 일했던 노동자 4명은 원청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낸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노동 3권을 훼손하는 블랙리스트 운용행위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이 사회의 적폐가 된 블랙리스트를 끝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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