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 PD 사망 이후 대책위원회와 CJ E&M은 드라마·예능 등 방송제작 스태프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공식논의를 3주에 걸쳐 진행했다. 임금과 노동시간·고용안정 등 기본 과제 외에도 핵심적으로 논의된 사항은 다름 아닌 ‘현장 소통’이었다.

방송산업 특성상 제작기간 중에 촬영지에 따라 업무공간 이동이 빈번하고, 작업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변수가 속출한다. 제작현장의 안정적인 관리와 운영을 위한 사전기획 기간과 예산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문제가 악화된다. 실제 촬영이 이뤄지기 전에 충분히 검토했어야 할 리스크와 변수들이 당일 현장에서 발견되다 보니 다수 현장 스태프들은 연출부 선에서 문제 해결이 이뤄질 때까지 무한정 대기하거나, 지연되고 완성도가 낮아진 작업수준을 만회하기 위한 돌발적인 노동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적게는 30~40명, 많게는 100명 가까운 스태프들의 노동과정을 책임져야 하는 연출부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방송제작 종사자들은 실제로도 긴 하루 노동시간을 뛰어넘는 노동강도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짧은 제작기간과 부족한 예산, 실시간 대본과 생방송 수준의 제작, 현장이슈 속출과 노동강도 증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다.

방송산업 제작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이해당사자의 포괄적인 논의구조가 부재한 조건에서, 실천적으로 제기된 해법은 제작현장에서 연출부와 담당 파트별 스태프 간의 일상적인 협의·조정을 강화하는 방안이었다. 일례로 일부 영화제작 현장의 경우 촬영·조명·음향 등 각 스태프부문 대표와 연출부 책임자가 현장에서 발생한 이슈에 대한 대책 수립, 향후 작업 과정과 노동조건 등을 협의하는 논의체계가 정례화돼 있다. 현장마다 편차는 있겠으나, 이론적으로 작업 과정 전반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유와 충실한 협의가 전제되면 개별 구성원이 체감하는 노동강도가 낮아지고, 조직 전체의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 영화산업의 일부 사례를 참조해 대책위는 CJ E&M에 제작현장에서 '스태프협의체'의 상시적인 운영을 장려하라고 요구했고 회사는 이를 수용했다.

한국은 산업적 시민권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다. 노사의 동등한 파트너십과 이해당사자 간 협의·조정이 불필요한 비용으로 여겨지거나, 때로는 불온한 인식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일반적인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 내지는 ‘정규직화 요구’는 같은 작업장을 공유하는 노동자들의 균질한 이해관계와 단위 기업의 지불능력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단위 사업장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고용형태와 노동 방식이 다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요구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등의 과제가 절대적 해법이 될 수도 없다. 파편화된 노동의 이해를 조직하고 대변하는 시도를 다각화하고, 새로운 경험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노동운동이 신흥산업의 노동문제를 보다 진지하게 바라보고, 유연한 전략과 전술을 채택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사업장뿐 아니라 세대·지역·직무·산업 등 노동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조합하면 기존 통념으로는 작동하기 어려웠던 노동의 이해대변이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공장의 문턱을 넘는 방법은, 새로운 공장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대중이 갖고 있는 다종다양한 이해관계를 엮어 낼 수 있는 과감한 상상력이다. 한 사람의 삶과 노동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와 갈등은 너무나도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방법론만을 고수하고 요구를 우겨 넣다 보면 전체 노동을 대변하는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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