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의 막말이 논란이다. 이언주 의원이 파업에 참여한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을 “미친 놈들” “그냥 동네 아줌마, 밥하는 아줌마” “부가가치나 생산성이 높아지는 직종이 아니다” 등의 표현으로 모욕한 것이 한 언론사 보도로 폭로됐다. 이 의원은 사회적 비난이 거세지자 유감을 표명했지만, 말이나 태도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표현이 거칠었을 뿐 내용은 옳다고 항변한다.

그런데 사실 그와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어떤 점에서 그가 내뱉은 말들은 한국 사회가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이념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문제가 되는 그의 말들을 뜯어보자.

먼저 “그냥 동네 아줌마”라는 표현.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오랫동안 남녀 임금격차 1위를 기록 중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남성의 생산성이 높아서도 아니고, 한국 여성의 생산성이 낮아서도 아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보육·돌봄·요리 등 여성 비율이 높은 직종의 평균임금이 매우 낮다. 이 일들은 인구 재생산을 위해 필요하지만 전통적으로 여성이 대가 없이 가정에서 해 왔던 것들이다. 그래서 이 일들은 무료노동 관습을 근거로 사회적으로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여성들이 출산·양육으로 경력단절을 겪고, 이를 사회적으로 보상하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OECD에서 1등으로 꼽히는 한국 남성들의 가사노동에 대한 무책임이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더욱 길고 고단하게 만든다.

이 의원의 “동네 아줌마”는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의 상징이다. “반찬값 벌러 온 아줌마”라며 같은 일을 해도 차별하는 것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오래된 관행이다. 우리나라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여성의 재생산 관련 일들을 사회적으로 평가절하한다. 이를 통해 여성노동자의 임금을 구조적으로 낮춘다.

다음으로 “부가가치가 높아지는 직종이 아니다”는 말. 우리나라는 대졸·고졸자 간 임금격차가 OECD 내에서도 큰 편이다. 유럽 선진국보다도 격차가 크다. 더군다나 노동력 중 고등교육 이수자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데도 그렇다.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대로라면 대졸자 공급이 상대적으로 많으면 다른 나라보다 임금격차가 작아야 정상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질이 선진국보다 좋을 리도 없다. 경제성장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부터는 고학력 취업자 증가가 국민경제 성장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학력별 임금격차가 큰 이유는 뭘까. 육체노동에 대한 체계적 멸시를 통해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정당화해 온 한국의 성장 방식과 관련이 깊다. 1970~80년대 자본가들은 현장 작업자들을 공돌이·공순이로 부르며 노동자들의 자존감을 낮췄다. 노동자들이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이만한 이데올로기가 없었다. 반대로 당시 정권과 자본가들은 ‘사’자 들어가는 직군들을 의식적으로 높게 대우해 잠재적 저항세력을 체제로 포섭하기도 했다. 판사·변호사·교수·고위공무원의 소득이 높은 것은 단지 노동시장 수요-공급 원리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런데 노동시장은 그 어떤 시장보다도 초기 조건에 따라 이후 관행이 강하게 유지된다.

이 의원이 말한 “부가가치 낮은 직종”은 육체노동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절하를 드러낸 표현이다. 우리나라 지배계급은 현장 노동자들이 장시간·고강도·저임금 노동을 견뎌 내도록 훈육했고, 그것을 경제성장의 밑천으로 삼았다. 이 의원이 변호사·대기업 임원·국회의원을 하며 받은 고액연봉은 사실 그가 멸시한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부가가치에서 나온 것이다.

“생산성 낮은 직종”이라는 주장을 보자. 임금이 노동자 생산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은 시민들이 경제학을 통해 배운 오랜 믿음 중 하나다. 그래서 이 의원은 저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나 하위공무원들을 생산성 낮은 노동자로 규정했다. 반대로 변호사와 기업 임원을 하며 받은 자신의 고소득은 높은 생산성을 증명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교를 다른 나라와 해 보면 어떨까. 전문직·자본소득자가 대부분인 우리나라의 소득 상위 10%는 서유럽 상위 10%보다 소득이 높다. 그러면 우리나라 전문직은 서유럽 선진국보다 생산성이 높은 걸까. 필자는 우리나라 전문직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없다.

한 나라의 생산성은 특정 직종의 능력이 아니라 공동체의 사회적 분업 결과다. 경제공동체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려면 인구를 재생산하고 노동력을 교육시키는 일부터 공장에서 육체적 작업을 통해 재화를 생산하는 일,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 창조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는 일 등 수없이 많은 일이 서로 잘 맞물려야 한다. 이런 사회적 분업이 잘 조직될 때 경제가 성장하고, 경제공동체가 함께 행복해진다. 이 의원처럼 소득에 따라 직종과 개별 노동자의 생산성을 따지는 것은 과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옳지 않다. 우리나라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높은 소득을 생산성으로 포장하며 그 소득의 수탈적·비생산적 성격을 감춘다.

역설적이지만 이언주 의원은 노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제대로 표현했다. 그는 ‘막말’을 통해 여성의 재생산 노동을 평가절하하고 세계 최고의 임금격차 문제, 육체노동에 대한 멸시와 저임금·장시간 노동 강요, 왜곡된 생산성 관념과 고소득자들의 자기 정당화를 세상에 폭로했다. 이 문제들은 오늘날 헬조선의 가장 중요한 의제들이며, 우리 주변의 ‘이언주들’이 공유하는 이념이다.

이제 역할을 다한 이 의원은 사퇴하는 것이 옳다. 노동자운동 역시 이 기회에 ‘노동 있는 민주주의’로 나가는 투쟁을 일신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