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수원지법 2017. 6. 16. 선고 2015가합64592·71934(병합) 판결

1. 사실

2015년 1월7일 공장폐쇄가 있었다. 그것은 하이디스테크놀로지㈜ 정리해고의 예고였다. 대만 자본이 주인인 회사는 주인인 대만 대주주의 결정과 그에 따른 이사회 의결로 공장폐쇄를 단행했다. 이천공장에서 TFT-LCD 기술을 이용한 제품을 생산·판매해 왔던 회사는, 1989년 현대전자 LCD사업본부로 설립돼 2002년 11월 별도 회사로 분사된 후에 2003년 중국 BOE 자본에, 2008년 대만 이잉크 자본에 인수돼 운영돼 오다가 이렇게 경영상 이유로 생산을 중단하고 공장폐쇄를 했던 것이고, 노동자들에게는 희망퇴직하지 않으면 정리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노동조합, 즉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는 공장폐쇄와 정리해고가 아닌 회사 정상화 추진을 촉구하며 고용안정위원회 등에서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주장했으나, 사측은 2015년 3월31일 희망퇴직하지 않고 남아 있던 생산부문 노동자 모두를 정리해고했다. 하이디스 생산부문 및 판매부문 종사자 327명 중 249명이 희망퇴직하고서 남아있던 78명이 정리해고된 것이다. 이로써 하이디스에는 폐쇄된 공장시설 관리와 지적재산권 관리 인원만 남게 됐다. 그리고 2015년 5월21일 정리해고자들은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며 해고무효확인 등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 주장

"공장 가동에 따라 수천억원의 누적 적자가 발생해서 공장폐쇄하고서 한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주장하며 사측은 공장폐쇄와 정리해고를 단행했던 것이고, 소송과정에서도 이를 반복해서 주장했다. 공장을 가동하면 할수록 적자가 발생할 뿐이라서 폐쇄하고서 그 종사 노동자를 해고한 것이니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마다 수백억원의 기술료 수익을 실현하는 상황에서 한 공장폐쇄와 정리해고는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주된 주장으로 노측은 맞섰다. 여기서 공장폐쇄·폐업·분할·합병·외주화, 기타 구조조정 등은 사용자의 본질적인 경영권 사항이라서 그 행사에 대해서는 노동자가 반대할 수 없고 순응해야 한다는 법리 도그마가 사측의 주장 논리의 밑바탕에 깔려 있었고, 해고노동자들의 대리인으로서 이러한 도그마에서 벗어나 정리해고할 정도의 경영상 필요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했다. 2008년 이잉크에 인수된 이후 해마다 적자가 발생해 왔지만 이 사건 정리해고 직전인 2014년에는 기술료 수익으로 84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실현했고, 그 수익의 일부 투자로 생산설비를 개선해 일부 생산라인을 가동하면 잔여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생산부문의 정상화가 가능했으며, 의료용·차량용·산업용 등 다품종 소량생산 체계로의 전환 등을 통해 생산부문을 정상화할 수 있었다 등 많은 주장을 했다. 물론 이에 대해 공장폐쇄와 정리해고를 자문하고서 소송을 대리한 김앤장 변호사들은 생산라인 신규투자에 1조원 이상이 소요되고 현재 생산라인으로는 가동하면 할수록 적자가 누적될 뿐이라며 노측 대리인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의 다툼은 정리해고에 관한 근로기준법 24조의 요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의 존부를 둘러싸고 전개된 것이다.

정리해고 요건 중 해고회피노력에 관해서는 사측은 2008년 인수 이후 세 차례 휴업 및 네 차례 휴무 실시, 여섯 차례 희망퇴직 실시, 자금차입, 조직개편 실시, 성과관리시스템 도입 및 M&A 회사매각 추진 등으로 다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이 사건 정리해고를 단행하면서 실시한 것들을 중심으로 해고회피노력을 다했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인데 이 사건 정리해고에 있어서는 희망퇴직 실시 외에는 해고회피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노측은 주장했다. 해고 대상자 선정과 관련해 피고 사측은 공장폐쇄로 그 노동자 모두를 정리해고 대상자로 선정했던 것이고 시설관리 업무와 제조 업무는 서로 대체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원고들은 시설관리 업무는 생산직도 대체 가능할 수 있고 단체협약이 정한 순서로 대상자 선정을 하지 않았다며 해고 대상자가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선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피고는 정리해고 약 80일 전부터 통보하고 16회에 걸쳐 고용안정위원회 참여를 요구하는 등 협의를 위한 노력을 했다며 근로기준법상 요구되는 성실한 협의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했고, 이에 원고들은 단체협약에서 정한 노조와의 사전합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3. 판결

수원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김동빈)는 이 사건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법리적 판단이든, 사실 판단이든 해고가 무효라는 결과가 중요했다. 구체적으로 “사용자인 피고는 공장폐쇄 및 정리해고 필요성 등에 관한 객관적 합리성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다고 단정할 수가 없고, 설령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해고회피노력을 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노조와의 합의 또는 성실한 협의를 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효라고 판결했다. 공장폐쇄에 따라 그 종사 생산직 노동자 모두를 정리해고한 것이고 생산라인 업무와 시설관리 업무가 대체가능하지 않다며 해고 대상자 선정이 근로기준법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본 것을 제외하고는 원고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판결이었다.

4. 의미

이번 판결은 사용자의 경영판단에 따른 공장폐쇄와 그에 따라 실시한 정리해고를 위법하다고 무효라고 판단했다. 바로 이 점이 정리해고법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판결이라고 평가할 수가 있겠다. 굳이 그것이 기존의 사용자 편향의 법리에서 벗어나 노동자 고용을 보호하는 판결이라고 치켜세우고 싶지 않다. 아무리 사용자의 경영권 행사로서 한 공장폐쇄 등이라도 그에 따른 정리해고는 근로기준법상 요건을 갖춰야 하는 것이고, 그 요건의 판단에 있어서 다른 정리해고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근로기준법과 단체협약이 정한 기준에 따라야 한다. 바로 이 점을 원고 대리인으로서 강조해서 주장했던 것이고, 법원은 판결로 이를 확인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런 통제 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제도로 공장폐쇄 등 사업장폐쇄가 사용자에 의해서 악용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노동법이 사용자에게 해고의 자유를 보장한 것이 아닌 한,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서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용자는 그 근로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노동자측 사유로 그 계약의 해지, 즉 해고하는 것 말고 사용자측 사정을 내세워 계약을 해지하려면 계약 불이행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근로기준법과 판례는 사용자의 경영사정을 이유로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정리해고를 허용해 왔다. 정리해고에서 노동자는 아무런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경영을 잘못한 사용자의 죄 말고는 없다. 정리해고제도는 사용자의 죄에 대한 부담을 노동자가 떠안도록 한 것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해 보자. 정리해고는 ‘사용자가 좀 더 잘살겠다’고 노동자를 죽이는 것이다. 이미 우리 근로기준법과 판례는 ‘사용자가 살겠다’고 노동자를 죽이는 제도로 정리해고제도를 이해하는 걸 포기한 지 오래다. 뭐 사용자가 죽겠다니 아무리 근로계약을 통해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도록 정한 경우라도 우리 노동자는 맘이 약해서 그 정도 사용자 사정이라면 양보해서 착한 내가 죽겠다고 할 수 있겠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이 나라에서는 이런 정도로 정리해고법을 집행해 오지 않은 지 오래다. 파산·도산처럼 정리해고하지 않으면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운 정도의 경영사정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 파악하지 않고, 단지 인원감축할 객관적인 합리성이 인정되는 정도의 경영상 사정이 있으면 족하다는 식으로 ‘너 죽고 나 더 잘살자’는 사용자편에서 이 나라에서 정리해고법을 집행해 왔다(대법원 1991.12.10 선고 91다8647 판결, 대법원 2012.6.28 선고 2010다38007 판결 등 참조). 그것이 오늘 하이디스 참사를 초래했다. 이런 법리에 자만한 자문을 받고서 공장폐쇄를 한 것이고, 매년 수백억원의 기술료 수익의 실현이 예정돼 있는데도 그걸 다 챙겨 가겠다고, 아무런 위험부담 없이 가져가겠다고 수백명의 노동자들을 희망퇴직·정리해고로 내쫓았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이런 기존 법리의 극복을 말하지 않았다. 단지 노동자를 죽이지 않고 다 같이 잘 살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기존 법리의 숲에서도 하이디스 노동자는 살려야 한다고 판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 나라에서 사업장 폐쇄를 내세운 정리해고를 실시하려는 사용자들에 경고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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