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은행과 방송국을 열려면 금융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은행법과 방송법에 의한 규정이다. 그만큼 사회적 파장과 공익적 기능이 큰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가지 사업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방송국의 경우 3~5년 사이 재승인을 받아야 영업활동을 이어 갈 수 있는 반면 은행은 그렇지 않다. 산업자본의 유입을 막기 위해 6개월에 한 번씩 대주주 적격성심사를 받지만 문제가 있을 경우 금융당국의 지분매각 명령을 이행하면 그만이다. 이를 두고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은행은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사실상 무기한 영업이 가능하다”며 “방송국은 심사표를 만들어 점수까지 매기며 재승인 여부를 결정하는데 왜 은행만 무사통과하냐”고 반문했다.

‘씨티은행 사태’를 두고 은행업 인가조건을 까다롭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에 지점 통폐합 인가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노조와 국회 정무위원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일 오후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은행업 인가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은행법 허점 많고, 무게중심 잃어"=한국씨티은행은 이달부터 전국 126개 지점 중 101개의 점포를 없앨 계획이다. 김득의 상임대표는 이를 두고 “자본의 파업이자, 시중은행을 지방은행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행업 인가는 노동자들의 파업시 은행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 여부도 감안해 이뤄진다. 은행이 서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서다. 은행법은 시중은행의 인가 요건을 자본금 1천억원 이상으로, 지방은행은 250억원 이상으로 구분하고 있다. 현행 은행법이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무게중심을 잃었고, 빈틈도 많다는 얘기다.

김 상임대표는 “씨티은행의 계획은 회사를 지방은행이자 인터넷은행으로 변경해 운영하겠다는 것인데 인가권이 있는 금융당국이 어떤 개입도 하지 못한다는 것은 현행법의 문제를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지점 신설과 폐쇄는 금융당국이 정하는 기준에 부합할 때만 허용됐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법이 대폭 수정되면서 해당 조항이 삭제됐다. 김득의 상임대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지점폐쇄 때는 금융당국의 승인을 얻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은행업 인가 요건 중 ‘은행업을 경영하기에 충분한 인력·영업시설’에 대한 규정을 명확히 하고,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은행업 인가시 은행 이용자의 접근성을 위해 전국 점포망 유지 의무 또는 광역시도에 필수지점을 운영하도록 하는 조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씨티은행, 문재인 정부에 도전"=법 개정에 앞서 정부가 미국의 동의명령제(consent order)에 해당하는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동의명령제는 불공정거래 행위 혐의가 있는 기업이 정부와 합의해 분쟁을 종결하는 제도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단기적으로는 금융감독당국이 미국의 동의명령제에 버금가는 자발적 사업계획의 보완을 이끌어 내야 하며 그 핵심은 전국을 영업구역으로 하는 은행으로서 적절한 지점망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금융서비스 이용의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한국형 지역 금융기회 균등법 제정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승일 사무금융노조 정책연구소장은 “씨티은행 지점 폐쇄는 문재인 정부의 금융정책에 대한 도전”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의 ‘금융정책 공백’ 상태에서 벗어나 금융업·은행업이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고 금융소비자 보호와 노동자 인권보호에 앞장서도록 재편하는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진홍 금융위 은행과장은 “은행 점포 통폐합은 원칙적으로 자율적 경영판단 사항이라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며 “그 과정에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거나 은행 안정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면밀히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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