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정부가 ‘가사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는 “가사서비스의 품질 향상과 이를 통한 시장 확대, 가사근로자 권익 보호 및 여성 일자리 참여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자 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 입법예고된 법안은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제안됐던 법안과 동일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법안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가사노동자를 고용해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요양보호사 제도와 유사하게 서비스 제공기관이 가사노동자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이용자가 지불한 가사서비스 이용요금 중 일부를 가사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법안의 기본 논리는 서비스 제공기관이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되게 함으로써 가사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가사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보호할 수 있는 대부분의 규정들은 적용이 어렵도록 돼 있다. 일례로 가사노동자 입장에서는 일정한 시간 이상을 일할 수 있고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임금을 받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안은 “가사근로자의 근로시간이 1주일에 15시간 이상 되도록 노력”할 의무만을 서비스 제공기관에 부과하고 있다. 이용자 가정에 입주해 일하는 가사노동자에 대해서는 “제공기관의 사업주와 이용자가 사전에 정한 가사서비스 제공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하는 특례 규정도 두고 있다. 가사노동자가 일정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노동시간을 확보하지 못해도 이를 사용자에게 강제하거나 노동자의 소득을 보장할 수단도 없는 데다가, 역으로 장시간 근무를 해도 이를 규제하거나 보상할 내용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유급주휴일·휴게시간도 적용되지 않고, 연차유급휴가도 근로기준법 기준에 미달하게 돼 있다.

더군다나 법안은 “가사서비스 시장 활성화”를 위해 ‘가사서비스 이용권’을 발행하고, 이용자가 이를 통해 가사노동을 ‘구매’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사회서비스업에서 활용되고 있는 바우처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인데, 바우처 방식은 기본적으로 노동이 시간 단위로 매매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서비스 이용자가 4시간어치 바우처를 가지면 이걸로 4시간어치 노동을 구매할 수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시간제로 노동조건이 결정되는 노동력상품이 되는 것이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이용자에게 이동하는 시간, 노동을 위해 대기하거나 준비하는 시간 등은 모두 노동시간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분급제’나 마트노동자들의 ‘15분 근로시간제’와 유사하게, 실제 근로를 제공한 시간이 아니라 사용자가 근로로 인정하는 시간만이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가사노동자에게 “원칙적으로 노동관계법이 적용”된다는 정부의 설명이나 사회보험이 적용될 것이라는 기대는 근거가 불투명하다. 가사노동자가 1주일에 두세 군데의 이용자에게 노동을 제공한다고 해도 초단시간 노동자가 아닌 것으로 인정될지도 불투명하고, 반대로 서비스 제공기관이 노동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가사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인위적으로 쪼개더라도 이를 규제할 수단도 없다.

복수의 이용자에게 노동을 제공하는 가사서비스의 특성에 걸맞은 보호가 입법기술상 어렵다면, 가사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세부적 노동조건을 교섭을 통해 정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이것이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 협약의 핵심적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 법안은 가사노동자들의 노동 3권 보장이나 대등한 노동조건 결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정부 법안은 박근혜 정부 시절 노동계가 비판했던 법안을 반복하고 있고, 노무현 정부 시절 입안된 요양보호사 제도와 사회서비스 바우처 제도의 문제점을 답습하고 있다. 더구나 이번 법안은 “가정생활의 유지·관리와 관련된 서비스로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에 의해 제공되는 서비스”에 적용되므로, 가정방문 ‘도우미’만이 아니라 개인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노동형태에 적용돼 노동관계법을 일부만 적용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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