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최저임금 결정시기가 다가왔다. 올해는 최저임금 인상액에 그 어느 해보다 사회적 관심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한 덕분이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을 핵심 요구로 30일 대규모 도심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최저임금 인상액은 언제나 경제적·정치적 논쟁거리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다. 미국에서는 지난 26일 워싱턴주립대 연구팀이 발표한 시애틀 최저임금 관련 보고서가 논란이다. 시애틀시의회는 2014년 '최저시급 15달러' 조례를 통과시키며 세계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시애틀은 조례에 따라 2015년 9.47달러에서 11달러로, 지난해 13달러로 최저시급을 인상했다.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주립대는 시의회가 최저임금 인상 효과에 관한 연구를 위임한 기관이다.

연구팀이 분석한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부정적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시급이 13달러가 되면서부터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총액이 오히려 감소했다.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시급 19달러 미만)의 고용과 노동시간이 감소한 탓이다. 평균시급이 3% 증가할 때 총노동시간이 9% 감소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평균적으로 125달러가 줄어든 것으로 계산됐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시간당 13달러보다 낮은데 법정최저임금이 이 선을 넘어 사용자들이 고용과 노동시간을 줄였다는 것이 이들의 추정이다.

보고서가 발표되자마자 반론이 제기됐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는 같은날 반박보고서를 내고 "연구팀의 분석이 매우 편향됐다"고 비판했다. 근거는 이렇다.

첫째, 연구팀은 체인점 같이 복수사업장을 두고 있는 기업을 조사에서 제외했다. 이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숫자는 조사 대상의 40%에 이른다. 시애틀은 유례없는 호황으로 체인점 기업들이 크게 성장 중이다. 결국 연구팀은 조사에서 지불능력이 있는 사업장의 저임금 노동자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얻는 이득을 배제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를 줄이고, 부정적 효과만 키운 셈이다.

둘째, 연구팀은 저임금 노동자가 고임금 노동자로 이동하는 노동시장 변화를 간과했다. 시애틀은 미국에서도 가장 경기가 호황인 곳이다. 노동시장 변화도 말 그대로 뜨겁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가 마구 해고된 것이 아니라 경기 호황에 따라 고임금층으로 이들이 이동한 것이란 의미다. 실제 고용데이터를 봐도 간접적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경제정책연구소는 워싱턴대 연구팀이 경기 호황의 긍정적 효과를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효과인 것처럼 분석했다고 봤다.

미국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둘러싼 논쟁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내 생각에 임금과 고용 변화를 법정최저임금 변수로 분석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직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렇다. 2014년 시애틀시의회가 만장일치로 최저임금 15달러 조례를 통과시킨 것은 시 경제의 탄탄대로 성장이 배경이었다. 시애틀은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부동산 가격이 두 배로 뛰었고, 취업자는 14% 늘었으며, 실업률은 7.5%에서 3.4%로 거의 완전고용에 가깝게 줄었다. 최저임금 탓에 경제에 문제가 생겼다는 어떤 신호도 없다. 물론 최저임금 덕분에 시애틀 경기가 호황이 된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최저임금 인상액만 두고 논쟁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한 문제를 놓치는 것일 수 있다. 정부가 따져 봐야 하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의 상태다. 왜 이 정도 임금도 주지 못하는 상태인지가 오히려 토론과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장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서비스업을 보자. 우리나라 서비스업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생산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본 투자가 부족하고, 수요도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한마디로 생산성을 향상시킬 동기가 부족하다. 프랜차이즈 기업들의 횡포에서 볼 수 있듯이 서비스업 대기업들은 자본투자를 통한 생산성 경쟁이 아니라 각종 부당거래와 시장독점으로 지대수익만 늘린다. 서비스업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자영업은 적극적 의미의 개인사업자라기보다는 일자리에서 밀려나 달리 갈 곳이 없는 실업노동력을 흡수하는 노동시장의 배수통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할 수 없는 서비스업의 이런 상태가 오히려 개선 대상이란 이야기다. 현재의 경제구조를 상수로 둔 채 최저임금 인상과 생산성 한계만 계속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니 현 상태 유지를 통해 기득권을 지속하려는 음흉한 전략에 불과하다.

최저임금 1만원은 사실 임금액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내 생각에 최저임금 1만원의 진정한 효과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적폐를 청산하는 방아쇠로서의 기능이다. 최저임금 1만원을 주지 못하는 산업부문을 오히려 진취적으로 개혁해 보자. 최저임금 1만원으로 나타나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문재인 정부에서 해결해 보자. 탁상공론 식 구조개혁보다 실효성이 있을 것이고, 말로만 외치는 서민 개혁이 아니라 현장에서부터 이뤄지는 진짜 서민을 위한 개혁이 될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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