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오후 한국노총회관에서 열린 양대노총 제조연대 출범식에서 노조 대표자들이 노동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환섭 전국민주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 김만재 전국금속산업연맹 위원장, 김상구 전국금속노동조합 위원장, 김동명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정기훈 기자

제조업 노동자들이 '양대 노총 제조연대'를 출범하고 침체기에 빠진 제조업 부활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를 구성하자고 정부에 요구했다.

한국노총 금속노련(위원장 김만재)·화학노련(위원장 김동명), 민주노총 금속노조(위원장 김상구)·화학섬유연맹(위원장 신환섭) 등 양대 노총 소속 4개 제조산별로 구성된 제조연대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출범식을 열고 "국가의 제조업 정책, 재벌 정책, 경제정책의 큰 흐름을 재벌 대기업 중심에서 노동 중심으로 변화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출범식에는 4개 제조산별 조합원들과 양대 노총 임원, 이용득·김경협·어기구·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종오 무소속 의원 등 90여명이 참석했다.

구조조정 중심 산업정책에서 노동중심 산업정책으로

2015년 3월 출범한 '양대 노총 제조부문 공동투쟁본부'가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반발해 만든 한시적 투쟁체였다면, 양대 노총 제조연대는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제조업 노동계가 일자리 위기를 극복하고 정부 산업정책에 개입하기 위해 만든 상설연대체다.

대표자들은 이날 출범선언문을 통해 "50만 제조노동자와 500만 제조업 종사자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여 양대 노총 제조공투본에서 제조연대로 거듭나게 됐다"며 "박근혜 노동개악을 파탄시킨 투쟁과 연대의 정신을 이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제조연대는 △제조산업발전특별법 제정·재벌개혁 입법 △4차 산업혁명과 연동한 제조업 부활 협의구조 구축 △최저임금 1만원·노동시간단축·일자리 창출 등 노동기본권 강화 △산별노조 제도개선 △지역별 교류협력 강화를 5대 핵심 사업으로 정했다.

제조연대는 정부에 4차 산업혁명 전략적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제조산업협의회(가칭) 구성을 요구했다. 제조연대는 "박근혜 정권 노동개악과 정부 주도 일방적 구조조정에 시달려 온 제조업 노동자에게 4차 산업혁명은 기술혁신으로 포장된 고용위기나 다름없다"며 "제조산업협의회에서 간접고용 근절, 원·하청 불공정거래 타파, 대기업·중소기업 임금격차 해소 등 제조노동자의 삶과 일자리, 노동권 영역까지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일자리위원회 참여 의지도 밝혔다. 제조연대는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전이라도 제조업 일자리 위기 극복을 위한 일자리위 참여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람을 먼저 자르고 보는 구조조정 중심 산업정책을 노조의 참여·개입을 통해 노동중심 산업정책으로 변화시키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대화와 경영참여로 제조업 활성화"

출범식에 이어 열린 '4차 산업혁명과 제조산업, 그리고 노동의 미래' 토론회에서는 제조연대가 제안한 제조산업협의회 같은 사회적 대화기구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잇따랐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발전을 위한 산업정책을 추진하는 각 나라 중에서도 사실상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독일 사례에 집중했다.

독일 정부는 기술혁신에 초점을 맞춘 산업4.0과 기술혁신이 현장에 도입됐을 때 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연구하는 노동4.0을 결합해 추진하고 있다. 2015년 3월에는 노사정이 참여하는 '산업의 미래 협의체'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독일 연방경제부장관과 독일 금속노조 위원장, 독일 산업연맹 회장이 참여하는 고위급회담에서 협의체 전체 방향을 결정한다. 5개 실무그룹(분과)마다 노사 대표가 공동분과장을 맡고 있다.

이문호 소장은 "독일처럼 사회적 대화와 경영참여가 활성화된 곳이 4차 산업혁명 시대 적응력과 제조업 경쟁력이 강하다"며 "양대 노총이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한 것이나 올해 2월 정세균 국회의장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이해관계자 거버넌스 구축을 제안한 것과 관련해 제조연대가 긍정적인 성명을 낸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소장은 노조에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중앙이나 업종별 사회적 대화와 함께 사업장 차원의 경영참여도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소장은 "기술혁신은 빠른데 노사 간 정보공유와 사전협의가 안 되면서 노조가 무조건 거부하거나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며 "노동이사제 같이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토론자로 나온 김성혁 금속노조 연구원장은 "노조는 눈앞의 임단협 중심 경제주의에서 벗어나 '더 많은 민주화, 더 좋은 일자리'라는 슬로건으로 산업에 개입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디지털화가 노동현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영향을 확대하기 위해 노사 대화와 공동정책 개발을 통한 사전대응이 필요하다"며 "8월에 출범하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에 노조 대표의 참여를 요구하고 산업·업종별 이해관계자 거버넌스 구축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적 산업재편 위해 제조산업발전특별법 필요

제조연대가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제조산업발전특별법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특별법은 노사정이 함께 제조산업 발전과 고용창출·고용보호 방안을 논의하는 '제조산업협의체'를 구성하고, 제조업발전기금 조성이나 외국인투자를 정상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속노조 법률원장인 송영섭 변호사는 "산업발전법이 있긴 하지만 경쟁력 강화 시책을 정부가 주도하고 있고, 사모펀드를 통한 기업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기업의 투자와 고용 확대방안이 부재하다"며 "긴급하게 자금이 필요한 회사를 지원하거나 생계 위험에 놓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방안이 없는 데다, 외투자본에 대한 적절한 규제방안도 없어 기술먹튀나 대량해고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송 변호사는 "노사가 정부정책 수립과 집행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제조산업협의체 구성, 고용안정을 위한 구조조정 예방과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기구 구성, 기업과 노동자들에 대한 기금 지원, 외투자본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담은 특별법 제정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과 김종호 고용노동부 노사관계법제과 사무관, 박기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부장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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