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향법)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처를 줬다면 미안하다."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사과'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왜 사과가 필요한지 곱씹어 보지 않고 "상대방이 원한다면 하겠다"는 사과는 결국 사과를 하는 사람 자신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유명을 달리한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지난 16일 이철성 경찰청장이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한 사과다. 고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지 1년7개월 만에, 경찰 수장이 처음으로 사과를 언급했다. 그러나 아무리 입장문을 살펴봐도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다는 것인지, 왜 사과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사과인지 묻고 싶다.

고인은 경찰의 직사살수행위로 쓰러져 한 차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중환자실에서 300일이 넘는 시간을 보내다 가족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끝내 사망했다. 사망 직후 경찰은 사인을 규명해야 한다며 부검영장을 집행하려고 했고, 가족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영장이 집행될지 모른다는 긴장 속에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당시 살수차를 조작한 경찰과 지휘한 경찰 등 관계자들은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깊은 애도'와 '진심 어린 사과'라는 말로, 고인의 죽음을, 600일에 이르는 고통의 시간을 모두 담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경찰이 '인권 경찰'로 거듭나겠다고 한다. 과거 일은 모두 잊고 '인권 경찰로 거듭나겠다'고 다짐만 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 거리로 나선 노동자·농민·학생들을 차벽과 물대포, 최루액으로 막아섰던 경찰이다. 쌍용자동차·갑을오토텍·유성기업 노동쟁의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범죄자로 몰아붙이고 사측 경비처럼 진압작전을 펼쳤던 경찰이다. 용산참사는 물론이고 밀양·강정에서 과잉진압과 인권침해 문제가 셀 수 없이 많이 지적됐는데도 단 한 차례 유감표명조차 하지 않았던 경찰이다.

경찰력에 희생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은 오롯이 그들의 몫이 됐을 뿐이다. 당시 책임자들은 승진하거나 영전했고 제대로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밝혀야 한다.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데 어떻게 '인권 경찰'로 거듭날 수 있겠나.

일방적인 사과와 다짐만으로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경찰 스스로 얻는 위안 정도일 뿐이다. 집회·시위 참가자들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범죄자로 보고 진압·통제 대상으로 보는 기본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인권 경찰'은 공염불에 그칠지도 모른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진정한 '인권 경찰'로 거듭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음을, 감히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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