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대중교통이나 자가용·도보로 출퇴근하다 사고가 나도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출퇴근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통과시켰다.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산재인정 범위가 대폭 확대됐지만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가 불분명한 직종’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함에 따라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상생활에 따른 경로 일탈도 재해=환노위가 지난 22일 의결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에는 통상적인 경로·방법으로 출퇴근하던 중 발생하는 모든 사고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산재보험법은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에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만을 산재로 인정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합리적 이유 없이 자가용과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노동자를 차별하고 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헌법상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판단이다. 공무원이나 교사·군인의 경우 이미 통상적 출퇴근 사고는 업무상재해로 인정받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통근버스가 아닌 대중교통이나 자가용·도보로 출퇴근하다 사고가 나도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를 일탈하거나 중단이 있는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지만, 경로일탈이 일상생활에 필요할 경우에는 인정한다. 노동자 중과실로 발생한 재해에 대한 급여제한도 없다.

◇근로복지공단 인력·예산 확충 시급=출퇴근재해 인정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당장 사업을 수행할 인력과 사업체계 구조 정비, 예산 확보가 시급하게 됐다. 실무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은 기획재정부에 추가인력 1천405명을 요청한 상태다.

김종섭 근로복지공단노조 위원장은 “출퇴근재해 중 80% 이상이 퇴근시간 이후에 발생한다”며 “사업주의 지배·관리에서 벗어나 발생한 재해이기 때문에 조사나 공정성 입증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충분한 인력 확보를 통한 제대로 된 업무 수행이 되지 않으면 공단과 노동계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인력 확보와 그에 따른 사무공간 확보, 시스템 구축을 위한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정안이 출퇴근재해 산재 인정 범위를 확장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출퇴근 경로와 방법이 일정하지 않은 서비스노동자나 가사노동자·일용직 노동자 등이 적용대상에서 제외될 소지도 있다. ‘통상적인 경로가 불분명한 직종’을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그 대상을 시행령으로 규정하도록 한 조항 때문이다. 출퇴근 경로와 방법이 일정하지 않더라도 합리적인 경로와 방법일 경우 재해 인정범위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가 불분명한 직종을 적용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특수고용 노동자나 일용직 노동자처럼 취약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또다시 차별받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개정안이 노동자들 간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미치지 못했다”며 “앞으로 비정규 노동자나 특수고용 노동자가 출퇴근재해 산재 적용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