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5일부터 16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106차 총회를 열었다. 중요한 의제의 하나로 ILO 노동기본권위원회는 2023년까지 회원국들이 이행해야 할 노동기본권 관련 ILO 의 실행지침을 정했다. 노사정 3자 합의 과정에서 물밑협상도 활발했다.

ILO 총회가 열릴 때마다 각국의 여전한 강제노동·아동노동·차별, 협약의 낮은 비준율이 도마에 오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비공식 경제, 농업 경제, 수출자유지역 내 노동권, 비전형노동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 노동계는 비정규직 문제가 단체교섭 진행을 어렵게 만드는 노동기본권의 위기를 주로 발표했다.

ILO 총회 때면 낮은 협약 비준율을 끌어올리자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특히 2019년 ILO 창립 100주년까지 8개 핵심협약은 반드시 비준하자고 각국 대표들을 상대로 압박이 진행됐다.

한국은 ILO 핵심협약 8개 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협약(87호)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98호), 강제노동협약(29호), 강제노동 철폐협약(105호) 등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앞의 2개 협약은 ‘노조할 권리’를 담았다.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은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한국은 특별한 주목 대상”이라고 밝혔다.(경향신문 6월12일) 문재인 대통령도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4개 협약 비준을 공약했다.

유엔인권이사회에서는 삼성 휴대전화 하청회사의 메탄올 피해자가 연설하고 노조할 권리(결사의 자유)를 주제로 금속노조가 유성기업과 발레오전장·상신브레이크·보쉬전장 사례도 발표했다. 이날 발표 현장에 있던 금속노조 법률원 김태욱 변호사는 “한국 정부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주장했는데 바로 이 부분은 코미디였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현지에서 별도의 논평도 냈다.

동아일보는 ILO 총회 내내 조용히 있다가 17일자 10면에 ‘최경림 대사 ILO 정부그룹 의장에’라는 단신기사를 뜬금없이 실었다. 최경림 주제네바 대표부 대사가 내년 6월까지 187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ILO 정부그룹 의장직을 수행한다는 거다. 노사정 그룹별 의장은 돌아가면서 맡는 자리다. 한국은 이미 2003년에도 정의용 전 주제네바 대사가 ILO 정부그룹 의장직을 맡은 바 있어 별로 뉴스거리도 안 된다. “최 대사가 정부그룹 의장에 만장일치로 선출됐다”는 우리 외교부의 보도자료는 한심하기 그지없다.

ILO 총회를 보도하려면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인데도 핵심협약 중 무려 4개나 비준하지 않은 나라임을 먼저 다루는 게 맞다. 특히 결사의 자유 관련 2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아서 생기는 ‘노조할 권리’의 박탈은 심각한 지경이다.

실명한 삼성 휴대전화 하청회사 메탄올 피해자가 연설한 소식을 다룬 언론도 몇 안 되는 실정이니, 망신살 뻗친 한국 정부 모습을 보도할 만한 언론이 한국에 있기는 한지도 의문이다.

말끝마다 국제표준(글로벌 스탠더드)을 외치는 우리 언론이 우리 정부가 국제 사회에서는 부당노동행위에 무관용 원칙을 강조했다는 재밌는 얘기를 그냥 듣고 넘긴 게 우습다. 이렇게 ‘노동’만 나오면 모르쇠로 일관하다가는 후진국을 면하기 어렵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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