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6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이 폐기됐다. 근로기준법까지 어겨 가며 “성과주의를 확산하겠다”고 밀어붙이던 자본 친화적 기획은 결국 박근혜 정부 몰락과 함께 수명을 다했다. ‘포스트 성과연봉제’ 논의가 한창이다. 직무급제가 유력한 대체재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과연 올바른 공공기관 임금체계는 무엇일까.


당사자 목소리 들어 절차적 공정성 확보해야
채준호 전북대 경영학부 교수

채준호 전북대 경영학부 교수

중앙정부에서 정답을 정해 주고 모든 기관이 그 정답에 맞게 숙제하는 식으로 정책이 진행돼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부에서 강하게 밀어붙인 성과연봉제의 가장 큰 오점은 절차적 공정성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공공기관 인사담당자조차 성과연봉제에 크게 동의하지 못했다. 일반 직원들의 반발로 인한 갈등은 예견된 것이었다.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이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든 해당 정책의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과의 충분한 소통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와 같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틀로 한계가 있다면 산업별 사회적 협의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과 관련한 쟁점이라면 가칭 공공기관 노사정협의회를 구성해 관련 논의를 활성화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형태의 산업별 노사정 협의 틀은 노사정위 하부기구로 구성하는 것보다는 별도의 독립기구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 과정에서 양대 노총의 적극적인 개입은 당연히 전제돼야 한다.

또한 성과연봉제 폐지 이후 새로운 임금체계 개편은 과거와 같이 단시간 안에 해결하려고 하는 순간 일을 그르칠 확률이 높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장기적인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각 기관 특성에 맞는 임금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몇 개월 만에 외부 연구용역으로 해결될 수도 없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될 중차대한 과제다. 이러한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한 다음에야 정책 추진에 힘을 받는다는 점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임금체계 개편이 아니라 임금격차 해소가 시급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

성과연봉제가 사실상 폐지되면서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임금체계를 그대로 둘 수 없다며 대안으로 직무급제를 제안한다. 그런데 지금 공공부문에서 임금체계 개편이 가장 필요하고 시급한 일인가. 의제설정 자체가 잘못됐다. 직무급제 주장은 성과연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프레임에 묶여 있는 이들이 하는 것이다.

지금은 임금체계 개편이 아니라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게 시급하고 중요하다. 정부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서 타당한 사유 없는 임금격차를 좁히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실제 의도는 성과주의를 확산하는 것이었다. 임금격차를 좁히려고 했다면 성별·고용형태·기관별 차이나 기관 내부 정규직·비정규직 차이를 좁히는 방안을 찾았어야 했다.

직무급제가 바람직한 임금체계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모델로 독일식 직무급제를 제시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직무 등급을 결정할 때 산별노조가 참여한다. 우리나라는 등급 간 격차가 필요하다면서도 당사자·노조 참여가 배제돼 있다. 사후 추인하는 방식이다. 직무급을 도입하려면 노조와 당사자 참여뿐만 아니라 직무분석이 우선돼야 한다. 준비하지도 않고 당위성만 주장하니 그동안 도입이 안 된 것이다.

직무급제와 관련해 덧붙이면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확충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직무급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조응하는 반면 다른 노동, 다른 임금을 부추긴다. 정규직으로 전환하더라도 낮은 직무등급을 받는 전환자들의 차별을 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강조돼야 할 것이 노조와 당사자 참여다.


“노조 참여는 필수, 노사 간 공감대 형성도 중요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부나 기업에선 ‘연공급은 악이고 직능급이나 직무급은 선’이라는 암묵적 전제 아래 연공급을 직능급이나 직무급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임금체계란 있을 수 없고, 어느 한 임금체계가 반드시 다른 임금체계보다 우월한 것도 아니다.

임금체계를 개편할 때는 생활안정과 함께 동기 부여라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수용성 측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안정적인 생계비 확보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하에서 연공급의 한계와 현실성 등을 고려한 임금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마치 바람몰이 하듯이 일방적인 방향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주장하기보다는 모범사례를 축적하는 게 중요하다.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임금체계 개편 과정, 즉 임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직급제도·승진제도·인사고과제도 등의 결정·변경·운용에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임금제도 설계와 실행시 노동자 참여는 수용성과 유효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노사 간 충분한 사전 정보 공유와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다. 제도를 운용하는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에 조직 구성원들 간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면, 새로운 임금제도 도입은 실행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되레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보상제도의 설계와 운용에 노동자를 참여시키고, 제도의 구체적 내용을 사전에 명확히 공시해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제도 성공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인 노사 간 상호신뢰도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산별교섭 발전 방안과 연동한 임금체계 변화 준비해야”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

성과급이 맞지 않다는 점은 이미 박근혜 정권을 지나며 판명이 났다. 현재와 같은 연공급을 직무급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지난 수년간 있었지만 성과가 없다. 직무급이 되지 않은 결정적 이유는 두 가지다. 직무급은 초기업단위 산별교섭이 가능할 때에서야 기업을 넘어서는 동일한 직무가치에 대한 동일한 임금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기업단위 교섭밖에 되지 않고 있다.

축적된 데이터도 없다. 전체 노동시장 차원에서 특정 직무에 대한 가치를 어느 정도로 할지 평가가 나와 있지 않다.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는 걸음마도 떼지 못하고 있다.

무기계약직을 만들면서 별도 직군·직렬을 만들어 임금체계를 적용시켜 봤다. 그런데 이게 또 다른 저임금 군을 만들어 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무급을 연공급의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대안적 임금체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를 두고 우리 사회는 성숙한 논의를 하지 못했다. 산별교섭 발전과 연동한 임금체계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노사 대화와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만 직무급이 가능하다.


“공공기관 직무가치 평가 어렵다”
나기수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

나기수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 논의가 ‘어쨌든 호봉제는 아니다’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호봉제는 우리 문화상 나이가 들수록 자녀 양육과 부모 봉양에 있어 가장의 역할이 커지는 것을 감안해 도입된 제도다. 가만히 있으면 임금이 오른다는 말도 틀리다. 가만히 있을 회사가 아니다. 이유가 어찌 됐든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급여체계는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에게 임금이란 워낙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대적 흐름이라 해도 급여가 노동자의 충분한 생활을 보장하고, 일한 만큼의 보상이라는 기본적인 전제를 충족해야 변경의 설득력이 생길 것이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직무급제를 당장 도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말 그대로 업무를 평가해 임금을 준다는 것인데, 평가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은행을 예로 들면 여신·수신·외환 등의 업무가 있다고 하면, 애초에 채용 때부터 어느 분야로 갈 것인지 물어보고 뽑아야 한다. 상황에 따라 수많은 변수가 있는데 여신은 얼마, 수신은 얼마짜리 업무라고 누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더구나 공공기관 업무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과 다르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업무가 이뤄지는데 하나하나를 직무로 나누고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이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에 노동자들이 반발한 것이 어느 날 뚝딱 등장해 1년 만에 시행하라고 해서이지 않는가. 측정의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100을 일한다고 믿는 사람에게 누군가 50을 일한다고 얘기하게끔 한다는데, 누가 수긍하겠느가. 아무리 짧더라도 최소 1~2년의 논의가 필요하다. 공공기관의 특성에 맞게 단순 실적보다는 사회적 가치 창조 여부를 기반으로 임금체계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