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지난 16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관련 후속조치방안을 의결했다. 아주 짧은 내용이다. “공공기관은 노사 자율적으로 보수체계를 결정하도록 허용한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성과연봉제 폐지를 선언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기나긴 싸움이었다. 지난 정부 시절은 그 어느 때보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단체협약 개입, 복지 축소, 보수규정 개정까지. 해마다 반복되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식의 정부 놀음에 “이런 꼴 당하려고 죽어라 일했던가”라는 조소가 절로 날 지경이었다.

마지막에 들이댄 성과연봉제는 정부가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임금을 제 맘대로 정하겠다는 포고였다.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체결한 단체협약을 무시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단체협약은 노동기본권의 핵심 중의 핵심이 아니던가. 급기야 지난해 초 양대 노총 소속 공공기관노조를 중심으로 공대위를 꾸려 조직적이고 전략적으로 맞섰다.

이른 봄 국회에서, 한여름 세종시에서 공공기관 노조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사수를 외쳤다.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다. 급기야 응답이 왔다. 지난해 11월 광화문광장의 촛불은 바로 이러한 땀에 대한 답이었다. 촛불을 키우는 데 앞장섰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지난주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노동조합과 노동자가 승리했다. 누가 뭐래도 성과연봉제 폐기의 가장 큰 의의다.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 이런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2008년 우정사업 민영화추진 저지, 2014년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정도가 기억날 뿐이다. 이번 성과연봉제 폐지도 이러한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장으로 기념하더라도 손색이 없다.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정의롭지 못한 정부와 정책에 맞서 단결해 저항해야 한다는 진리도 새삼 확인했다.

우리나라 헌법질서를 확인하는 소중하고도 값비싼 경험이다. 헌법과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따르는 것은 정부의 기본 책무다. 헌법과 법률을 넘어선 정부를 우리 헌법은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줄기차게 위헌·위법행위를 자행했다. 그 어느 법률에 노동자의 동의가 없어도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할 수 있다고 돼 있는가. 어느 누가 대통령이라면 헌법과 법률을 무시해도 된다고 하던가. 그 어느 법률에 성과연봉제를 이사회가 자의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고 돼 있는가.

이참에 껍데기뿐인 정부의 위법한 행정지침도 하루속히 폐기돼야 한다.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해고의 근거가 된 이른바 양대 지침이 최선순위다. 아예 “앞으로는 위법한 행정행위는 절대 없다”고 선언해야 한다.

성과연봉제 폐지는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위헌적이고 위법한 노동정책은 제안자체가 어렵게 됐다. 반드시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오로지 노동법을 제대로 지키는 데 힘쓸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기도 하다. 성과연봉제 폐지 이유도 그 안에 노동조합이 없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노동조건은 노사가 대등하게 결정해야한다”는 명제는 법 이전에 상식이지 않는가.

성과연봉제 폐지에 대한 반동도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벌써부터 “철밥통론”이나 “노동계 보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정부의 지지도도 자연스레 떨어질 터. 그때는 이러한 비논리가 더 득세를 할 것이 자명하다. 개혁이 실패할 수도 있다. 그래서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모든 노동정책에는 반드시 노동조합과 노동자가 그 중심이 돼야 한다. 정부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성과연봉제 폐지 과정에서 보듯이 노동조합은 이 정부의 든든한 지원세력이다. 다만 여기에는 큰 걸림돌이 있다. “과연 노동조합이 우리 사회 모든 노동문제 해소의 대표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고작 10%의 조직률로는 나머지 90%를 대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뼈아프고도 매우 일리 있는 주장이다. 답은 간단하다. 조직된 노동자들은 조직을 확대하는 데 더욱 노력해야 한다. 이제는 “노동조합 하기 어렵다”는 말도 변명이 될 공산이 크지 않는가. 그리고 정부는 노동자라면 그 누구라도 노동조합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다해야 한다. 더 커진 노동조합은 정부를 위한 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세련된 실천방안을 마련할 때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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