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7.4.19 선고 2016누67242 판결


사안의 개요

원고(주식회사)는 1993년 군인공제회 직영사업체로 설립된 후 2012년 3월 독립법인으로 전환된 군인공제회의 자회사로 상시 약 110명의 근로자를 사용해 국방시설 유지관리업 등을 영위한다.

피고보조참가인은 1996년 2월 군인공제회 제1문화사업소 총무부에 촉탁직으로 임용돼 근무하다가 1998년 1월 생산직군 기능직으로 임용돼 근무했는데, 기능직의 직군 명칭이 2002년 1월 지원직으로 변경됐다. 2003년 11월 말 군인공제회 제1문화사업소가 경영악화로 폐쇄됨에 따라 참가인은 2003년 12월 원고에 신규 임용된 후 직영사업팀·회관사업팀 등에서 11년4개월간 사무직에 해당하는 경리·서무 및 관리·행정 업무를 수행했다. 참가인과 원고 사이에 2013년 1월, 2014년 3월, 2015년 3월 체결한 연봉계약서에는 직책이 ‘경리/서무’로 기재돼 있다. 그런데 원고는 2015년 4월1일 참가인을 지원직인 신길사업소 안내·접수 업무로 전직처분을 했다. 경리·서무 업무를 담당할 당시 근무일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월 3회 휴일근무),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까지였는데, 이 사건 전직처분 후에는 A(오전 5시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B(오후 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C(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를 택일해 교대로 근무하고, 월 6일 내지 9일의 휴무가 주어지며, 근무시간 중 상당 부분을 안내업무 담당자와 함께 근무했다.

참가인이 신규임용된 2003년 12월 당시 원고의 취업규칙에는 사무직·기술직·계약직 등 3개 직군만 있고 지원직에 관한 직제규정은 없었다. 그런데도 원고는 군인공제회의 직제규정을 준용해 참가인을 지원직으로 분류했다. 군인공제회의 직제규정은 직군을 별정직·사무직·기술직·지원직·생산직 등으로 구분하고, 지원직은 안내·기사업무 담당자로서 사무직과 달리 직급단계 및 승진체계가 없는 단일직군으로 급여체계도 사무직과 달랐다. 원고는 ‘조직 및 업무분장규칙’의 별표인 정원표에 지원직을 0명으로 표시했다. 원고는 2012년 10월 관련 규정을 제·개정해 지원직 직군을 신설했는데, 지원직 직원이란 ‘사무직 및 기술직 이외에 일정 수준의 기능(업무능력)만 보유하면 임무수행을 할 수 있는 직위에 채용된 자’를 말한다고 규정했다. 2015년 현재 원고의 지원직 정원은 8명(현원 5명)이었는데, 사무직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참가인 1명뿐이고, 나머지 지원직 근로자들은 비서·운전기사·접수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참가인은 수차례 원고에게 사무직으로 직군을 전환해 줄 것을 요구했고, 원고도 그 타당성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도 했으나 끝내 거부했다. 원고는 무기계약직 직원들의 경우에는 사무직으로 전환해 주면서도 사무직 업무를 수행하고 있던 참가인에 대해서는 이를 거절했다. 오히려 참가인에 대해서는 사무직 업무수행조차도 박탈하고 지원직 업무로 이 사건 전직처분을 했던 것이다.

구제절차의 경과 및 대상 판결의 요지

참가인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전직 구제신청을 했고, 서울지노위는 전직의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고 그로 인한 생활상 불이익이 적지 않으며 협의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제명령을 했다. 원고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했으나, 중앙노동위는 원고의 재심신청을 기각했다.

원고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1심 판결은 이 사건 전직처분은 원고의 업무상 필요에 의한 것으로서 그에 따른 참가인의 생활상의 불이익이 근로자가 통상 감수해야 할 정도를 현저하게 벗어난 것이 아닌 경우에 해당하므로 인사권자인 원고의 정당한 권한 범위 내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이유로 중앙노동위 재심판정을 취소했다(서울행정법원 2016.9.23 선고 2016구합50792 판결). 참가인이 항소했는데, 그 항소심 판결이 바로 대상판결이다.

대상판결은 이 사건 전직처분은 실질적으로 사무직 업무를 수행해 온 참가인을 단순기능직인 지원직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것으로서 원고의 업무상 필요가 그다지 크지 않은 데 반해 참가인에게는 생활상의 큰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서, 인사권자인 원고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 봄이 상당하다고 해서 1심 판결을 취소했다.

검토

전보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일관된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① 업무상의 필요성 ② 전보 등에 따른 근로자의 생활상의 불이익을 비교·교량하고 ③ 근로자측과의 협의 등 그 전보처분 과정에서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대법원 1998.12.22 선고 97누5435 판결, 대법원 2000.4.11 선고 99두2963 판결 등 참조). 업무상의 필요는 인원 배치를 변경할 필요성이 있고 그 변경에 어떠한 근로자를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 하는 인원선택의 합리성을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노동력의 적정 배치, 업무능률의 증진, 근무의욕의 고양, 업무운영의 원활화, 직장질서의 유지나 회복, 근로자 간의 인화 등의 사정도 포함된다.

이 사건에서 핵심적인 쟁점은 업무상 필요성과 생활상 불이익을 판단함에 있어 참가인이 형식적으로 지원직으로 편제돼 있었다는 사실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장기간 사무직 업무만을 수행해 온 사실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하는 점이다. 1심 판결도 사무직 근로자에게 지원직 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것은 사실상의 강등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므로,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게 된다. 1심 판결은 참가인이 사무직이 아니라 지원직이라는 사실을 기준으로 해서 이 사건 전직처분은 지원직에서 지원직으로 전직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상판결은 참가인이 장기간 사무직 업무만을 수행해 온 사실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즉 장기간 사무직 업무만을 수행해 온 참가인으로 하여금 지원직 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이 사건 전직처분은 그 업무상 필요성이 그다지 크지 않은 데 비해, 참가인으로서는 장기간 사무직 업무만을 담당해 온 것에 대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지원직 업무를 맡게 됨으로써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는 것은 물론 근무형태도 교대제 업무로 바뀌게 됨으로써 장기간 동안 형성된 근무형태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기는 등 큰 생활상의 불이익을 입게 됐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전직처분이 지원직 업무를 담당해 온 직원이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한 직제변경이라면, 종전에 지원직 업무를 담당해온 직원으로 하여금 접수업무를 담당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굳이 참가인으로 하여금 담당하게 해야 할 업무상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봤다.

사용자와 근로자의 근로관계는 계약의 형식보다 실질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태도다. 이 사건에서 참가인이 사실상 사무직인지 여부는 형식적인 편제나 명칭을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실질적으로 담당했던 업무 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사용자가 우월적 지위에서 임의로 정하고 그에 대해 근로자가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형식적인 사항을 중시해 판단하게 되면, 근로자 보호라는 노동법 취지가 몰각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1심 판결은 원고와 참가인 사이에 참가인의 담당업무를 사무직 업무로 명시하는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으나, 연봉계약서에는 참가인의 직책으로 ‘경리/서무’를 명시했다. 또 어떠한 명칭과 내용의 계약서를 작성할 것인지는 우월한 지위에 있는 원고가 결정하고, 원고에 취업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참가인이 결정할 수는 없다. 참가인이 11년4개월간 계속해서 사무직 업무를 담당했다는 것은 참가인의 업무역량이 충분했음을 의미한다. 원고도 참가인을 사무직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한 바까지 있었다.

대상판결은 전직 처분의 정당성 요건인 업무상 필요와 생활상 불이익을 판단함에 있어 근로자가 실제로 담당한 업무를 기준으로 하고, 근로자가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히는 전직처분의 정당성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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