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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연봉제 대신 직무급제 띄우기?] 노동 전문가들 “직무급제 만병통치약 아니다”실현 가능성·준비 부족에도 유력한 대안처럼 거론
   
 

정부가 지난 16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폐기한 가운데 새로운 공공기관 임금체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임금체계는 직무급제다. 일의 난이도·업무강도·책임정도에 따라 임금을 주는 방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식 성과연봉제에 반대한다”면서도 “단순히 연공서열대로 임금이 올라가는 구조는 옳지 않고 새로운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 박순애 경영평가단장도 성과연봉제 폐기를 결정한 당일 “기재부가 직무급 체계를 연구해 새로운 제도를 마련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날 박광온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대변인은 성과연봉제를 대체할 임금체계와 관련해 “아직 없다.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성과연봉제를 대신할 임금체계를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직무급제가 유력한 방안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연공급제 대체할 방안은?

새로운 임금체계가 거론되는 것은 연공급제의 단점 때문이다. 연공급제는 일의 난이도나 노동자 능력·숙련도와는 무관하게 근속연수가 쌓일수록 임금이 오르는 체계다. 형평성·공정성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연공급제를 비판하는 이들은 특히 "비정규직 차별을 심화한다"고 지적한다. 사용자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 기성세대는 고용불안에, 청년세대는 구직난에 시달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주장도 펼친다.

총액인건비를 제한하는 공공기관만 봐도 연공급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다. 무기계약직은 연차가 쌓여도 임금이 좀체 오르지 않는 반면 정규직들은 오래 일할수록 임금이 상승한다.

공공기관 간 임금격차도 심각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 지원사업’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핵심직군에서 일하는 대졸 남성 초임은 공기업이 월 279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지방공기업은 196만원에 그쳤다. 직급별로 봐도 공기업은 모든 직급(1~7급)에서 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지방공기업보다 임금이 높았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소속 공공기관 유형이 다르다는 이유로 임금에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같은 일을 하면 같은 급여를 주는 직무급제가 연공급제 또는 성과연봉제를 대체할 임금체계로 떠오른 배경이다.

임금·직무정보 여전히 부족한데…

직무급제가 대안 임금체계의 전부인 양 인식되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직무급제는 미국과 독일에서 발달했는데, 노사관계 역사나 인사노무관리 시스템, 국민 정서가 우리나라와 다르기 때문이다.

직무급을 하려면 명확한 직무분류가 필요한데,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업무할당이 유연하고 폭이 넓다. 독일식 직무급제는 직무가 바뀌어야 임금이 오른다. 근속연수나 숙련도가 쌓여도 임금이 오르지 않아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다. 직무급제는 기업별이 아닌 산업별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역시 기업별 노사관계 중심인 우리나라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직무급제를 시행하는 데 장애요인으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임금이나 직무에 대한 정보 부족이다. 직무등급을 어떻게 나눌지, 해당 직무에 어떤 수준의 임금을 적용할지 정보와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정보 부족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지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노동연구원이 2006년 진행한 조사에서 기업들은 직무급을 도입하지 않는 이유로 직무평가의 어려움과 시장임금 정보 부재를 꼽았다. 고용노동부가 2012년 실시한 임금정책 수요조사에서도 “직무별 시장임금 정보를 충분히 획득하고 있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한 기업은 18.8%에 불과했다. 반면 “아니오”라고 답한 기업은 36%나 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다국적기업 관계자들이 ‘본사에는 임금이나 직무 관련 정보가 풍부한 반면 한국에서는 정보가 없어 직무급제를 운영할 수가 없다’는 호소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현상은 공공부문도 비슷하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은 2010년 정부 지침에 따라 간부급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와 직무급제를 도입했다. 노동연구원의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 지원사업’ 보고서를 보면 직무급제를 실시하는 162개 공공기관 중 외부 전문기관에서 직무분석을 한 곳은 41.4%에 머물렀다. 직무분석을 아예 하지 않은 곳이 17.3%나 됐다.

직무급제를 도입한 기관들도 기존 직무수당을 기본연봉에 편입했을 뿐이다. 직무급제라면 직무에 따라 직급과 연봉이 달라야 하는데, 실제로는 직급은 그대로 둔 채 직무수당에서만 차이를 두고 있는 셈이다. 정동관 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직무급에 대한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이해도와 수용도는 성과급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제2의 성과연봉제 될 수도”

준비 없이 성급하게 직무급제를 도입하면 성과연봉제 도입에 버금가는 노사갈등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성과급제든 직무급제든 교과서적으로는 나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성과평가나 직무평가라는 칼자루를 누가 쥐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직무평가와 임금정보 없이 시행하면 성과연봉제 부작용처럼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다. 유성규 노무사는 “칼자루를 어린애들에게 주면 안 되는데, 한국 노사관계 지형에서는 어린애가 아니라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비유했다.

노동연구원의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 지원사업’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임금과 복리후생에 대한 노조 영향력은 5점 만점에 각각 3.40점과 3.47점으로 비교적 높았다. 하지만 승진평가(2.65점)와 무기계약직 전환(2.84점), 비정규직 관리(2.85점)에 대한 영향력은 낮았다. 노조나 노동자들이 직무평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고, 사용자들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정동관 부연구위원은 “평가를 전제로 한 임금체계 변화 시도는 평가시스템에 대한 영향력이 적은 노조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엔 성과연봉제, 올해는 직무급제
“급하게 추진 말고 숙련급까지 고려해야”


연공급을 대체할 임금체계가 불가피하다면, 충분한 준비작업 뒤 직무급제를 시행하거나 직능급(숙련급)과 직무급을 함께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직능급은 능력이나 숙련도를 평가한 뒤 급여를 결정하는 제도다. 오래 일한 노동자일수록 숙련도가 향상돼 임금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 직무가 바뀌지 않으면 임금인상이 어려운 직무급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사회학)는 일본의 역할급(직무직능급제)과 유사한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정이환 교수는 “직능급을 직종이나 직군별로 운영하면 직무급적 요소를 가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노사정이 2008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임금체계 개편 원칙은 “직무가치와 숙련요소를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휴지 조각이 됐지만 2015년 9월15일 노사정 합의에도 “직무·숙련 등을 기준으로 해서 노사자율로 추진한다”는 내용이 있다.

노사정 합의안에도 없던 성과연봉제가 지난해 느닷없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올해는 직무급제가 유일한 대안처럼 일부에서 거론되고 모양새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직무급제가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얘기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연공급제의 장점도 분명히 있는 만큼 정부는 임금체계의 속성과 주변 환경을 고려해 개편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학태  ta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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