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일방적으로 도입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사실상 폐기되면서 노정 간 신뢰회복과 사회적 대화 재개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공약했던 양대 지침 폐기와 최저임금 대폭 인상 같은 추가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방적 노동정책 되돌린 첫 사례
“최저임금 대폭 인상, 전교조·공무원노조 인정 시급”


18일 정부와 노동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지난 16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지난해 1월 발표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폐기했다. 노정관계가 한 발짝 진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기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었다. 노동계가 폐기를 요구한 박근혜 정부 시절 노동적폐 중 하나다.

노동계는 문 대통령 당선 뒤 노동적폐 해소와 노정교섭 정례화를 전제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런 가운데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와 기재부가 노정협의를 한 끝에 성과연봉제 폐기를 이끌어 낸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일방적 노동정책을 되돌린 첫 사례다.

정부가 노동정책과 관련해 추가조치를 내놓으면 노정관계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 재개와 노정신뢰 회복 전제조건으로 "정부 행정조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30개 의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행정조치와 법·제도 개선을 포함한 15개 노정교섭 의제를 설정한 상태다.

특히 공정해고(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 폐기,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설립신고증 교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성과연봉제 폐기 이후 문재인 정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성과연봉제 폐기 노정협의처럼 대화 결과가 좋다면 중앙 차원의 사회적 대화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겠냐”며 “다음으로 최저임금 인상 폭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민주적인 노정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에서 정부의 성과연봉제 폐기를 긍정적으로 본다”며 “양대 지침 폐기나 전교조·공무원노조 인정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동계와 정부가 지속적으로 협의채널을 유지하는 것도 관건이다. 양대 노총이 노정협의 정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구체적인 일정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노동계는 내각 구성이 마무리되면 노정협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직무급제가 성과연봉제 대안?
전문가들 “노동계와 충분히 대화해야”


성과연봉제가 폐기됨에 따라 대안적 임금체계에도 관심이 쏠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성과연봉제 대안으로 직무급제를 언급한 만큼 직무급제가 공공기관 임금체계로 언급되는 분위기다. 직무급제로 동일노동 동일가치 임금을 실현할 수 있고, 근속이 늘어날수록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제가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노동조건을 위협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작스런 연공급제(호봉제) 붕괴나 직무급제에 대한 노동계의 거부감이 크다. 사용자가 주도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성과연봉제처럼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다.

전문가들도 직무급제가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는 것을 우려한다. 직무급제 시행을 위한 직무평가나 임금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고, 직무급제를 시행 중인 미국·독일 등의 노사관계나 정서가 우리나라와 다르기 때문이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연공급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전부 버려야 할 임금체계는 아니다”며 “연공급과 직무급·숙련급을 절충하는 방식으로 천천히 임금체계를 개편해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직무급제를 긍정적으로 보는 전문가도 장기적인 임금체계 개편을 주문하고 있다. 최영기 국민의당 좋은일자리본부장은 “현재 노동시장 구조에서 연공급제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면서도 “정부가 임금·직무정보를 제공하면서 5년 혹은 10년 장기계획을 세우고 임금체계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 본부장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거나 저성과자를 솎아 내기 위해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인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된다”며 “노동자들과 충분히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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