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하이디스 해고노동자들이 2년2개월 만에 정리해고 무효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도 없고 해고회피 노력도 다하지 않았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로 경영난을 이유로 한 사용자의 무분별한 공장폐쇄와 정리해고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법원 “해고기간 임금 지급하라”=수원지법 민사13부(부장판사 김동빈)는 하이디스 해고노동자 58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지난 16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하이디스는 정리해고 당시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없었고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도 다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노조와 충분히 협의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법원은 해고기간 동안 미지급 임금 30여억원을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 필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기준 마련과 그에 따른 대상자 선정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기준에 대한 노조와의 성실한 협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법원은 하이디스가 공정한 해고기준을 정하고 그 대상을 선정하는 것 외에 모든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공정한 해고기준과 대상자 선정은 공장폐쇄로 인한 전원해고이기에 위법성을 따지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1989년 현대전자 LCD사업부로 시작한 하이디스는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 제조업체다. 현대전자 부도 뒤 2002년 중국 비오이그룹에 2008년에는 대만 이잉크에 연이어 매각됐다. 대만 이잉크는 하이디스 매입 후 생산부문을 없애고 광시야각 원천기술(FFS) 특허권 장사에 집중했다.

이잉크는 하이디스가 매년 1천여억원에 이르는 기술료 수익을 벌어들이는데도 2015년 1월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유는 경영난이었다. 이천공장을 폐쇄하고 직원 377명 중 253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다. 희망퇴직 거부자 중 79명이 같은해 3월 정리해고를 당했다. 지난해 1월에는 시설관리 업무를 외주화하고 해당노동자 15명을 정리해고했다.

배재형 전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장은 “모든 것은 내 책임”이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고노동자들은 배 전 지회장의 사망원인 규명과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대만 원정 항의시위를 했다. 정리해고 위법성을 주장하며 서울 광화문 대만영사관과 국회 앞에서 장기농성을 하기도 했다.

◇제2, 제3의 쌍용차 사태 막을 수 있나=하이디스는 중국과 대만으로 매각될 때마다 기술유출 의혹에 휩싸였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FFS 특허 등 기술력을 빼내기 위해 외국자본이 하이디스를 인수했고, 공장폐쇄와 정리해고를 강행했다”고 주장한다. 쌍용자동차에서 일어난 외국자본의 기술먹튀 행각이 하이디스에서 재현된 셈이다.

2005년 쌍용차를 인수한 중국 상하이자동차는 투자 약속은 이행하지 않은 채 기술만 취했고, 끝내 쌍용차를 버렸다. 2009년 2천646명 정리해고에 노동자들은 공장점거 파업으로 맞섰지만 법원은 “쌍용차 정리해고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상목 하이디스지회장은 “공장폐쇄를 통한 정리해고를 인정한다면 제조업에서 살아남을 곳이 없다”며 “회사는 경영을 이유로 쉽게 공장을 폐쇄하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한 뒤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다시 공장을 가동하는 만행을 저지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비록 1심이지만 법원이 정리해고 불법성을 인정했다”며 “외국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을 인수한 뒤 기술만 빼먹고 철수하는 잘못된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고 말했다.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공장폐쇄로 인한 정리해고 사건에서 노동자들이 이긴 적이 없다”며 “법원이 정리해고 요건을 엄격히 판단함으로써 사용자가 경영 적자를 이유로 함부로 공장을 폐쇄하고 정리해고하는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하이디스는 특허 수익이 있음에도 생산라인 적자를 이유로 공장을 폐쇄했다”며 “일부 공정이나 사업 적자를 이유로 정리해고를 남발하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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