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야 미뤄 뒀던 옷장 정리를 했다. 매서웠던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내 몸을 감쌌던 두꺼운 외투와 점퍼들을 들고 세탁소를 찾아가는 길에, 점퍼 한 귀퉁이에 묻은 촛농을 발견하고서야 지난겨울 뜨거웠던 광장을 다시 떠올렸다. 촛불·탄핵·장미대선,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한 대통령의 당선과 새로운 정부의 출범까지. 매서웠던 추위가 지난 자리에 신록(新綠)이 찾아오듯 지난 몇 달간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새삼스럽지만 절감하게 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일성(一聲)으로 비정규직 제로화를 선언하고, 장시간 근로 등 잘못된 노동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표명했다. 직접고용·정규고용 원칙과 노동기본권 확립을 위한 대통령의 확고한 입장이 임기 말까지 유지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통령의 행보에 재계(財界)는 못마땅한 심사를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한국경총 부회장은 “편협한 발상”이라 비난하고, 대한상의 회장은 “너무 이르다”며 속도조절에 나섰다.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정확히 파악해 부담을 최소화해 달라”고 반발하고, 심지어 한국금형협동조합 이사장은 “휴일근로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아야 하며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52시간으로 단축 시행시 노사합의로 특별연장근로를 상시 허용해 줘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재계뿐만 아니라 관련 부처인 고용노동부 또한 "산업 현장의 혼란 등이 우려된다"며 연장근로에 휴일근로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태세이고, 여당 내에서조차 이를 근로기준법 개정 문제로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쯤 되면 근로기준법은 입이 없어 표현을 못할 뿐 억울함을 감출 수가 없을 것이다. 1주간의 근로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근기법 50조1항), 당사자 간에 합의가 있을 때에만 12시간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다(근기법 53조1항)는 근로기준법 규정으로부터 주당 68시간의 근로시간이 가능하다는 셈법은 도저히 도출될 수 없다.

1주일은 7일이 아니라 5일이라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노동부 행정해석이 근로기준법에 없는 장시간 노동을 적법한 것으로 용인하도록 한 포장지가 됐을 따름이다. 근로기준법에 "1주일은 7일"이라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법률 규정으로서는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규정을 추가하지 않더라도 좋다. 혼란을 자초한 비상식적 행정해석을 노동부 스스로 폐기하면 그로써 족할 일이다.

현실론으로 당위를 외면하는 재계 입장도 완곡하게 표현해 납득하기 어렵다. 근로기준법에는 이미 연장근로와 휴일근로에 가산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다. 따라서 휴일근로의 중복할증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용자에게 새로운 부담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가산임금을 지급할 의무를 애써 외면하려 했던 사용자의 시도가 좌절된 것에 불과하다. 근로기준법에 따른 노동자의 가산임금청구권이 현실 속에서 살아 있는 권리로 확인되는 것일 뿐이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알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즉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사람의 본성이라 말했다. 혼란을 야기한 자 혼란을 수습할 책임이 있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 책임을 스스로 이행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마땅히 부끄러워할 일이다. 이제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있었을지 모를 적폐를 찾아보고 청산하자. 남 탓은, 역시나 완곡하게 표현하면, 별로 멋진 모습이 아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