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국 변호사(전 민변 노동위원장)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공항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며 “상시·지속 업무와 안전·생명 관련 분야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는 원칙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올해 안에 협력사 직원 1만명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속적으로 비정규직을 늘린 지난 정권들의 행태에 비춰 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잘 뽑았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정규직화 선언만으로 비정규직 제로시대가 열리지는 않는다.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요인을 점검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첫째, 지금까지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이 매년 증가한 것은 역대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비용절감·경영효율화 정책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과 박근혜 정부 시절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 등이 그것이다. 그 내용들을 보면 기능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비핵심업무 축소, 민간개방 확대, 민간경합 축소 등 구조조정과 민영화·외주화를 부추기는 정책으로 가득 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조정과 외주화를 조장해 온 정책과 지침을 폐기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예를 들면 "민간위탁 활성화"나 "시간선택제 공무원 확대" 혹은 "구조조정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비핵심업무 아웃소싱을 적극 추진한다" 같은 행정지침·규정을 삭제해야 한다.

둘째, 공공부문 경영평가 방식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는 고용을 늘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평가요소로 대전환하겠다”며 기획재정부에 공공기관 경영평가 지침 변경을 주문했다. 그동안 비용이나 효율에 중점을 둔 경영평가 방식으로 인해 비정규직이 증가해 왔음을 고려할 때 매우 적절한 주문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근혜 정부하에서의 경영합리화·효율화, 수익성 중심 평가방식을 생명·안전·고객만족도·차별해소·고용안정 등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셋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관련해 핵심적인 사항으로 공공부문에 적용되는 총인건비 내지 기준인건비제에 주목해야 한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기재부는 공공기관의 임금·복지를 총인건비 내에서 정부 예산과 경영지침에 따라 운영되도록 철저히 통제했다. 행정자치부가 정한 공기업·준정부기관 및 예산편성지침과 지방공기업 예산편성기준은 예상 운용 전반의 규제 틀로 노동자의 임금결정을 구속하는 강력한 통제장치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예산편성지침과 기준에서 결정하는 총인건비제 혹은 기준인건비제는 인건비 한도에서 조직 정원과 인건비·예산을 각 기관의 특성에 맞게 배분해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제도다. 그런데 실제로는 신규인력 충원이 필요한 분야의 증원을 저해하고, 필요한 인원을 인건비가 아닌 사업비로 책정하는 기간제 비정규직이나 민간위탁·외주화 방식으로 돌려 사용하게 함으로써 비정규직을 조장하는 원인이 돼 왔다.

총인건비제를 그대로 두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면 당장 인건비 한도에 부닥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총인건비제를 폐기하거나 수정하지 않으면, 당장 정규직화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사업비를 인건비로 전용해 정규직화하더라도 노동조건은 비정규직일 때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으로 전환됐으나 비정규직 당시의 임금·복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해 ‘무기계약직’ 내지 ‘중규직’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차별이 지속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든 무기계약직의 처우개선이든 이를 위해서는 총인건비제를 폐기하거나 대폭 수정해야 한다.

벌써부터 공공부문 정규직화 방식으로 공사에 자회사를 설립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자회사 방식은 원청 정규직을 줄이고 싼 임금으로 노동력을 사용하던 차별의 또 다른 유형이었다. 무늬만 정규직이고 처우는 비정규직 상태를 지속시키는 방편이 되기 십상인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를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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