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캠프가 무슨 연유로 노동회의소를 공약에 넣었는지 모르나, 이 공약은 실행할 필요가 없다. 무노조 노동자 90%의 권익 대변과 노동회의소는 상관관계가 없다. 상공회의소를 거론하는데, 거기는 반년 매출액이 170억원이 넘어야 별도 가입절차 없이 ‘당연회원’이 되고, 그 이하면 자율 가입이다.

상공회의소법을 보면 “상공업계를 대표해 그 권익을 대변하고 회원에게 기술과 정보 등을 제공해 회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높임으로써 상공업의 발전을 꾀한다”고 나와 있지만, 상의는 상공업계 전체보다 형편 좋은 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사실 상공회의소법도 폐지해야 한다. 법정기구를 빌미로 예산 등 각종 혜택을 누리면서도 중소상공인은 소외키시고 대상공인이나 ‘지역유지’들을 위해 기능해 왔기 때문이다.

노동조합과의 관계에서 노동회의소의 위상은 불분명하다. 지금까지 논의 과정을 보면 노조에 참가하지 않거나 못하는 90%는 노동조합쪽에서 조직을 일부러 안 하거나 조직하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이야기가 나온다. 조직된 10%에는 비정규직도 있고 영세사업장에 속한 노동자들도 있다. 90%에는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정규직도 있고, 현대자동차 사무관리직처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이도 있다. 노조가 있더라도 100인 미만 사업장은 기업별노조주의를 우선하고 산별노조주의를 억제하는 현행 법·제도하에서는 조직적으로 버티기 힘들다.

노동조합을 둘러싼 가장 큰 오해가 대기업·정규직·공공부문·남성 노동자들은 노동 3권을 온전히 누리는 것으로 믿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온전히 누리는 노동자는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다. 헌법 조항과 하위 법령에서 노동 3권을 예외로 두거나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지원하고 촉진하는 쪽으로 설계되기보다는 억제하고 약화시키는 쪽으로 만들어졌다.

헌법을 개정할 경우 손봐야 할 조항이나 용어도 있고(근로자를 노동자로 바꾸는 게 대표적이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 하위 법령에서 노동권을 억제하고 약화시키는 조항들을 개폐해야 한다. 동시에 시행령·시행규칙·행정해석 등 시대에 뒤떨어지고 글로벌 기준과 충돌하는 ‘관료독재’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정권 초기에 시급한 건 노동회의소가 아니라 뒤틀린 노동권을 바로 펴는 일이다. 노동정책의 목표를 정립해야 하는데, 그 작업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결사의 자유 협약(87호)과 단체교섭권 협약(98호)조차 비준하지 않은 나라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노동회의소 같은 물 건너온 ‘탱자’를 들이미는 건 일의 앞뒤를 모르는 처사다. 노동자 전체를 포괄하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도 제대로(effectively) 보장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노조가 못 챙기는 90%를 국가가 나서 법적 강제(law enforcement)로 챙기겠다고 노동회의소를 만든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껏 대한상의와 지방상의 회장을 누가 맡아 왔는지 살펴봐도 90%의 권익 대변을 위해 노동회의소를 만든다는 주장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노동회의소가 만들어지면 중앙 회장은 주로 노동부나 (민주노총은 안 들어온다고 했으니) 한국노총쪽에서 한가락 하신 분들이 맡을 것이다. 지방도 90%와는 상관없는 ‘선수’들이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를 자꾸 거론하는데, 거기는 사회적으로 노동권이 온전하게 확립돼 있다. 무엇보다 단체협약 적용률이 사실상 100%다. 이런 조건이야말로 노동회의소의 토대를 이룬다.

노동회의소가 급한 게 아니다. 헌법 조문으로만 존재하고 하위 법에서 부정되는 노동권의 ‘비정상’을 정상화해야 한다. 시작은 ILO 기본협약 비준이다. 그 다음은 비준한 협약에 걸맞게 법·제도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새 정부 5년은 이것만 해도 벅차다. 맥락적으로 노동회의소 문제는 노사발전재단과 얽혀 있다. 노사발전재단이 지난 10년 동안 무엇을 해 왔는지 평가한 후 노동회의소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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