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던 날 물 위로 올랐던 세월호가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던 날 뭍에 닿았다. 한 달이 조금 지나 대선이 치러졌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던 후보가 새 대통령이 됐다. 촛불대선을 이끈 시민들 뒤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숨진 백남기 농민과 노조탄압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은 유성기업 한광호 조합원이 있었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박근혜 정부를 복기해야 한다면 가장 적합한 이는 박래군(56·사진) 인권중심 사람 소장이다. 박래군 소장은 박근혜 정부의 눈엣가시였다. 4·16연대 공동대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공동대표. 30년 인권운동을 한 그의 최근 이력이다.

얼마 전 박래군 소장은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광주의 아픔’을 널리 알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4명의 열사 이름을 호명했다. 마지막으로 거명된 이가 박래군 소장의 동생인 박래전 열사였다. 그는 1988년 “광주는 살아 있다”고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스물다섯의 나이로 분신해 사망했다.

세월호에 갇힌 학생·시민들의 목숨과 꿈을 길러 내지 못한 정부가 물러났다. 이어 공식석상에서 열사의 이름을 소리쳐 부른 정부가 들어섰다. 박래군 소장에게 새 정부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25일 오후 서울 성산동 인권재단 사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잊힌 열사 이름 부른 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이 동생인 박래전 열사를 호명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4·16연대 공동대표로 세월호 유가족들과 정식으로 초대를 받아 행사에 참석했다. 정부가 주최하는 기념식에 초대받은 것도 처음이었고, 5·18민주묘지에 데모가 아닌 목적으로 간 것도 처음이었다. 무척 어색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 정신’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확인하고 싶었다. 광주시민들이 꼭 듣고 싶은 얘기를 했고, 한 발 나아가 헬기 기총 사격에 대한 진상규명, 전남도청 복원을 약속했다. 헌법에 5·18 정신을 담겠다고도 했다. 뿐만 아니라 광주를 위해 희생한 열사의 정신을 기리자며 박관현·표정두·조성만의 이름을 거론했다. 거기서 끝일 줄 알았다. 갑자기 동생의 이름이 불렸을 때 울컥했다. 옆에 세월호 유가족이 없었더라면 울었을 것이다.(웃음) 29년 만에 동생 이름이 공식석상에서 불렸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뜻밖의 선물이었다.”

박래군 소장은 83년 학내시위로 강제징집을 당해 2년3개월 군복무를 했다. 부대 안에서 84년 대우자동차 파업, 85년 구로동맹파업 소식을 들으면서 “제대하면 노동운동에 뛰어들겠다”는 결심을 했다. 실제 제대 후 현장 활동을 위해 부평의 한 공장에 취업했지만 두 달 만에 해고자 신세가 됐다. 이후 몇 차례 감옥 생활을 전전하던 중 비극적인 사건을 맞게 됐다. 동생의 죽음은 그를 인권운동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는 이소선 어머니와의 인연으로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서 활동했다. 유가족들의 가장 큰 바람은 내 아들딸·형제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기억되는 것이다. 박래군 소장은 “광주에서 올라온 그날 밤 나만 감동받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대통령 연설문을 빗대 ‘광주’를 외치며 산화한 총 12명 열사 이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 이소선 어머니와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동생의 죽음이 계기가 됐다. 그전에는 먼발치에서만 뵙던 분이었다. 동생이 죽고 나서 병원에 있을 때부터 장례식까지 어머니가 계속 찾아오셨다. 많이 위로해 주셨다. 동생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한 것도 어머니의 권유를 따랐다. 동생을 잃고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가 유가협에 나오라고 하시더라. 때마침 88년 박정희·전두환 때 의문사를 당한 가족들이 모여 집단으로 종로5가에서 농성을 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들의 시위와 캠페인을 지원하기 위해 유가협 사무국장을 맡았다. 래전이의 죽음이 출발이었지만 나를 인권운동으로 이끌어 주셨던 분은 어머니다. 유가협 활동을 하며 한집에서 같이 살기도 했다. 어머니와 끈끈한 인연을 갖고 있다.”

"노조 조직률, 인권·복지 바로미터"

이후 30년 가까이 인권운동을 하며 그는 주로 힘이 없고, 억울한 사람들을 만나 왔다. 그중 상당수가 국가 폭력에 의해 죽거나 고통받은 사람들이다. 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 희생자들이 대표적이다. 박 소장은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선진국이란 인권 보장이 잘된 나라”라며 “유럽 여러 국가는 국민의 인권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보장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와 인권 보장 수준이 높은 국가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노조의 힘이 무척 세다는 점이에요. 다들 노조 조직률이 60%에 달합니다. 우리나라를 보세요. 20%까지 올랐다가 언론·정부·기업의 합동작전으로 10%로 떨어졌습니다. 복지와 인권이 보장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러워만 하지 말고 노조 조직률을 높여야 합니다.”

- 4·16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대형 참사와 관련해 사회운동세력이 전국적 대책위원회를 만들어서 개입한 것은 세월호가 처음이다. 국가가 국민을 구해 내지 못하고 사건의 진실을 지속적으로 은폐·조작하려는 시도가 보여 벌어진 일이다. 인권운동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것을 경계하는 시선이 엄청나 유가족들을 만나는 것도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그러던 중 유가족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한 1천만 서명운동에 나섰고,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이를 지원하면서 접점이 생겼다. 일반적인 사건이라면 유가족 보상이 끝나면 마무리될 수도 있지만 세월호는 달랐다. 죽어 가는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엄마 아빠들의 억울함, ‘내 자식과 가족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들이 온갖 모욕과 고통을 견디면서 버틴 하나의 힘이 됐다. 전국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도 시간이 지난다고 흩어지거나 약해지지 않고 꾸준히 이어졌다. 4·16연대가 이러한 힘을 연결시키면서 3년 이상을 버텨 왔다. 그것이 지난해 말 광화문광장에 촛불을 켜는 조건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세월호 '새로운 운동의 길' 제시"

-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뭔가.

“운동도 새로웠고, 유가족도 새로웠다. 기존의 운동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이 그토록 완강하게 자기들의 요구를 걸고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세월호 참사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세상을 정면으로 보게 만들었다. 우리나라가 이토록 '개판'이었다는 것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이게 나라냐’는 구호, ‘사회 전체가 세월호’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것이 돈 중심, 경쟁 중심이었다는 반성이다. 사람들은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앙조직의 지침이나 동원도 없었다. 스스로 모이고 토론하고 실천했다. 기존의 조직 활동과 사회운동과는 다른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박래군 소장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한 정부와 사법부에 비판을 쏟아 냈다.

“박근혜 정권은 민주노총을 깨면 다른 운동도 약화될 것으로 보고 노동계를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노동운동 대표자를 공동정범으로 보고 구속한 것은 부당합니다. 이는 곧 노동자를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임을 부정한 것이고, 노동운동을 부정한 일입니다.”

-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마디로 보수 반동정권이었다.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았다. 역사 발전을 부정하고 되돌리려 했다. 개인들의 욕망을 자극해 국민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 줄 것처럼 사기를 쳤다. 경제민주화 공약을 지키기는커녕 양극화를 극단으로 심화시켰다. 두 대통령이 준 하나의 교훈이 있다. 공약보다는 살아온 인생과 평소 언행이 중요하다는 점일 것이다. 지난 정권 9년은 인권과도 거리가 멀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인권시스템을 아주 적극적으로 부정했던 정권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말도 안 되는 무자격자를 앉히려 시도했고, 공권력 집행기관에 이뤄졌던 인권교육이 사라졌다. 용산참사와 쌍용차 사태가 이 시기에 일어났다. 쌍용차 사태 이후 죽음의 행렬을 보자. 이는 정권의 필요에 의해 노동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몰고 고립시키면서 결국 노조를 깨려다 벌어진 일이다.”

- 보수정권을 지나면서 노동자의 삶도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우려가 많다.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우선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악마의 제도다. 노조간부 한 명에게 수십억원의 손해배상이 청구되면서 가정이 파탄 난다. 손배·가압류는 결국 노조파괴 수단으로 악용된다. 노조할 자유가 부정되면 우리 사회 곳곳의 다른 자유도 사라질 수 있다. 양대 노총의 여러 활동가들이 다른 무엇보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 노조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갈린 손배·가압류 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갖길 바란다. 노동자들 역시 현실을 바로 봤으면 좋겠다. 비정규직 문제가 비정규직만의 문제일까? 현재의 비정규직은 사실상 헌법상 노동 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하청에 재하청을 거치면서 이런 문제들이 방치되고 조장되기까지 한다. 노동자 사이의 서열화와 위계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 정규직이라고 언제까지 안전할까. 비정규직 문제를 나와 내 자식들 문제라고 봐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이 싸워야 한다. 그래야 사회와 정부를 움직일 수 있다. 한 사업장 안에서 비정규직은 노조 조합원으로 받아 주네 마네 하는 것으로 싸우면 귀족노조니 강성노조니 하는 말들이 먹혀들어 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 불신을 바꾸기 위해서는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방향은 옳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노동자 대표를 동등한 협상 파트너로 대화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는 노사정이 신뢰를 갖고 대화해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다. 정권교체의 결과가 실패로 끝나면 모두가 불행하다. 새 정부가 노동계와 지혜를 모아 가길 바란다.”

박래군 소장은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만든 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가 있던 날은 2014년 <노란봉투>에 이어 손잡고가 만든 두 번째 연극 <작전명, C가 왔다>의 첫 공연이 열린 날이다. 공연은 다음달 11일까지 서울 혜화동 연우소극장에서 열린다.

“C는 그 유명한 창조컨설팅입니다. 노조 내부에서 아무리 얘기한들 한계가 있어요. 손배·가압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월호가 그랬듯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시작하는 공연이라 저도 아직 못 봤는데요. 블랙코미디 형식의 재미난 작품이라고 하니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가 있다면.

“우선 쌍용차 사태, 용산참사와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등 국가가 국민에게 고통을 준 범죄에 대해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책임자를 찾아내 처벌해야 한다. 이것은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인권적인 과제다. 이와 관련해 국가폭력을 낳은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더 이상 국가정보원이 간첩을 조작해 낼 수 없도록 국가보안법을 고쳐야 한다. 민주공화국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다음으로 사회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 복지제도 확충과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선 비정상적인 자살률과 출산율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창궐하고 있는 차별과 혐오 문제도 바로잡아야 한다. 차별과 혐오는 사회적 약자에게 쏠린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 노동자들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되는 차별 진정 사건의 60%가 고용과 관련된 부분이다.”

박래군 소장은 새 정부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관련한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4월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 참사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열린 세월호 3주기 기억식에 참석해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활을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 참사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에 나서야 합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매년 2천여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합니다. 현 정부가 안전사회의 초석을 다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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