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이 갖고, 또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모자라고. 세상은 참으로 불평등한 것인가 보네. 슬픔 말고는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없으니….”(<행복한 왕자> 중에서)

동화 <행복한 왕자>를 어린 시절 읽어 봤거나 아이에게 읽어 준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도 이 문장은 생경할 것이다.

이 동화는 보석들로 치장된 ‘행복한 왕자’ 동상이 칼자루와 눈에 박혀 있던 루비·사파이어를 비롯해 몸에 박혀 있던 금 조각들을 제비에게 부탁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행복한 왕자 원문을 읽어 보면 인물들의 묘사나 상황이 오히려 어른에게 더 어울리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왕자의 모습이 꿈속에서 본 천사와 같다"는 고아원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의 꿈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는' 수학선생님이나 자신의 드레스에 시계추 문양을 수놓고 있는 가난한 재봉사에게 "게으르다"고 이야기하는 여왕의 시녀, 겨울에 날아다니는 제비를 보고 신문에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로 긴 글을 보내는 교수와 글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여러 차례 인용하는 사람들, 그 도시 시장의 말이라면 항상 찬성하는 시의원들은 아이들의 동화에 나오지 않는다(사람들에게 금을 모두 나눠 줘 흉측하게 변한 왕자의 동상을 끌어내린 이는 시민들이 아니라 시장이라는 사실도 구체적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원작과 아이들이 보는 동화의 차이와는 다르게 지금 우리의 현실과 ‘행복한 왕자’ 속 세상은 맞닿아 있다.

열이 많이 나서 오렌지를 달라고 보채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물밖에 없는 가난한 재봉사 엄마, 쓰러질 것같이 배가 고프고 추워서 글을 못 쓰고 있는 젊은 작가, 성냥을 팔지 못한 채 맨발로 울고 있는 소녀처럼 동화 속에 나오는 ‘지나치게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숱하게 많다. 그러기에 참으로 불평등한 세상에서 오로지 공평한 것은 ‘슬픔’뿐이라는 왕자의 말이 주는 공명은 크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책의 저자인 오스카 와일드의 생애에 관한 것이며 이것이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난 와일드는 <행복한 왕자>뿐 아니라 많은 소설·희곡 작품으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16세 연하남을 사랑하면서 불행의 길로 들어선다. 영국 법원은 그에게 풍기문란 죄목으로 2년의 강제노동형을 선고했다. 1895년의 일이었다. 출소 뒤 국적을 박탈당하고 프랑스로 쫓겨났으며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120여년이 지난 이 땅에서 이니셜 A로 불리는 어느 육군 대위는 업무상 관계없이 사적인 공간에서 합의하에 가진 성관계가 단지 상대가 동성이란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동성애 자체를 범죄화하는 군형법 조항이 처벌 근거가 됐다.

영국은 이미 오래전 평등법과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올해 1월에는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해 동성애 금지법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남성 동성애자들을 사면하는 새로운 법이 시행됐다. 이 법을 통해 그를 포함해 5만여명이 사후 사면을 적용받았다. 법 시행을 발표한 영국 법무부 장관은 “진정으로 중요한 날”이라며 “발생한 피해를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사과하고 이러한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행동했다”고 말했다.

혹시 우리도 시간이 지난 미래의 어느 날, 이런 반성을 하게 되는 현재의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을까.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 정체성은 말 그대로 개인의 정체성입니다. 저는 이성애자지만,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지난 대선 당시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1분 발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화답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가능하면 늦지 않게.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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