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승묵 집배노조 위원장

지난해 5월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았다. 구의역 김군으로 알려진 청년의 가방에는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이 들어 있었다. 끼니까지 거르고 일하면서도 처우는 형편없는 하청노동자 처지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구의역 사고 1주기를 맞아 공공운수노조가 22일부터 27일까지를 생명안전주간으로 정하고,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한 궤도·의료·집배·화물 노동자의 글을 보내왔다. 5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우정사업본부는 대표적인 과로 사업장이다. 지난해 집배원 5명이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 올해는 벌써 3명이 과로사했다. 집배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천888시간이다. 전 세계에서 장시간 노동을 자랑하는 한국 평균 노동시간(2015년 기준 2천228시간)보다 훨씬 길다. 집배원들은 흔히 “별 보고 출근하고 달 보고 퇴근한다” “집배원은 죽으면 무릎부터 썩을 것이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장시간 고된 노동에서 나온 자조 섞인 한탄일 것이다.

집배원 과로사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로는 교통사고 사망보다 과로사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흔히 집배원은 이륜차를 타고 외근업무를 하기 때문에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난해만 보더라도 집배원 5명이 과로사할 때 교통사고 사망은 1건에 그쳤다. 장시간 노동이 집배원의 생명을 가장 위협하는 요소라는 방증이다.

두 번째로는 도심과 농촌을 가리지 않고 과로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도심 집배원은 인구밀집도 때문에 바쁠 것이라고 쉽게 예상하지만 농촌 역시 조건이 녹록지 않다. 하루에 80~100킬로미터씩 이륜차를 타고 다니는 집배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집배원 과로사 문제는 한 지역 혹은 도심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 문제이며 함께 바꿔야 하는 문제다.

무엇이 이토록 과도한 연장근무를 묵인하도록 하는 것일까. 근로기준법 독소조항 중 하나인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 규정에 근거하면 집배원에게는 제한 없이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다. 집배원뿐만 아니라 전체 사업체의 54.5%가 특례업종 대상으로 집계될 정도로 지나치게 남용된다. 사업주는 근기법에서 노동시간을 무한히 허가해 준 탓에 면죄부를 받는다.

공무원 역시 초과근무 제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국민에 대한 헌신’이라는 미명 아래 과로가 만연하다. 하지만 인력증원 없이 노동시간만 규제하면 편법이 판친다. 우정사업본부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부터 집배원 과로사 문제에 여론의 관심이 쏠리면서 우정사업본부가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우정사업본부 대책은 바로 집배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통제하는 것이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세대수가 증가하고 택배같이 배달하기 까다로운 우편물이 늘어 노동강도가 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항상 오전 7시까지 출근하던 집배원에게 근무시간을 줄인답시고 한 시간 늦게 출근하라고 하는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진심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할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통계상 노동시간만 줄이면 된다는 탁상행정의 끝판왕을 보여 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시간단축 공약은 인력증원이 선행될 때만 유효하다. 우정사업본부처럼 획기적인 인력 증원 없이 노동시간을 조작한다면 과로사만 더 늘어날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인력을 무기계약직·특수고용직 중심으로 늘리려고 하는 악질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제재가 필요한 부분이다.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이 아니다. 우정사업본부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 상시집배원의 이직률이 20% 가까이나 된다. 높은 이직률은 우정사업본부에서 골치 아픈 문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만큼 무기계약직 고용과 임금이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이직률이 높으면 결국 이는 사회적 비용 증가로 돌아온다. 부디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규 집배인력을 증원해 일하다 과로로 죽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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