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영구 변호사(전교조 상근변호사)

미국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독일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악의 평범성’을 말했다.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은 일부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아니라 상부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됐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많은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산하기관 직원들이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법정은 이들의 고해성소가 됐다고 한다.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관여했던 문체부 직원들은 당시의 고통스러운 심정과 자괴감을 이야기하면서도 인사상 불이익 등을 우려해 상부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만약 당신이 공무원으로서 상부로부터 블랙리스트 작성 명령을 받았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 무비판적으로 복종하고 집행하겠는가. 아니면 이를 비판하고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겠는가.

헌법 7조1항은 공무원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이며 ‘특정 정당의 봉사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헌법 7조2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이지 특정 정당의 봉사자가 아니므로, 정당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국가’와 ‘정부’는 구별된다. 즉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헌법과 국가’에 대해서는 마땅히 충실할 의무를 부담하지만 ‘정부나 집권정당’에 충실할 의무는 없다. 따라서 공무원은 헌법이나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그릇된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이를 무비판적으로 복종·집행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비판·시정해야 할 ‘헌법충실의무’를 부담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우리 정부와 사회는 헌법에 무비판적인 공무원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결론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만일 공무원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옷 벗을 각오를 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 공무원에게 영혼을 가지고 헌법에 충실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우리 사회는 공무원이 헌법충실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는가.

2009년 정부의 공권력 남용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89명의 교사가 형사처벌을 받고 징계처분을 받았다. 시국선언 직후 대통령령인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이 개정돼 “공무원은 집단·연명(連名)으로 또는 단체의 명의를 사용해 국가의 정책을 반대하거나 국가정책의 수립·집행을 방해해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 신설됐다.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100여명의 교사가 기소됐다. 2015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역시 수십 명의 교사가 수사를 받았다.

공무원·교원 개인만이 아니다. 공무원노조·교원노조 역시 사용자인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는 이유로 수십 명의 노조간부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그간 우리 사회가 영혼을 가지고자 했던 공무원과 교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자 얼마나 공을 들여왔는지 알 수 있다. 그 결과 수많은 적폐들이 이제 청산돼야 할 과제로 고스란히 남게 됐다.

사실 비판을 받아서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정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부 역시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권력을 가진 자가 오류를 범할 경우 그 영향은 대단히 크고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정부에 대한 폭넓은 비판을 허용해야 한다. 특히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가진 공무원들이 공직 내부 비리나 부정에 대해 실효적인 감시와 견제를 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적폐를 청산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제2의, 제3의 세월호 참사·블랙리스트·국정농단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일은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에서, 블랙리스트에서, 수많은 적폐에서, 때로는 괴로워하고, 때로는 공범이 됐던 수많은 공무원들이 다시금 영혼을 가진 공무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일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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