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국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덴마크의 75세 이상 노년층 고용률은 0%로 일하는 노년층이 거의 없다고 한다. 반면 한국의 일하는 75세 이상 노년층은 17.9%(2015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매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연령대를 조금 낮춘 65세 이상 노년층 고용률은 30.6%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세 명 중 한 명은 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의 근로소득 비중이 가장 큰 국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은퇴 후에도 이렇게 활발한 노동을 이어 가는 우리나라 노년층의 경제상황은 어떨까. 비극적이게도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63.3%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면서도 가장 가난한 노인들이 바로 우리나라 노인들이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히 ‘연금·복지제도 미성숙’만이 노인빈곤의 원인이 아님을 말해 준다. 일하는 노인들이 가난을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질 낮은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고, 노인노동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노인들이 가장 많이 일하는 경비원·건물관리원 같은 경우 장시간·야간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감시·단속적 근로자’라는 이름으로 연장·야간수당 없는 최저수준의 임금만을 받는다. 55세 이상 고령자들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적용 제외대상에 해당돼 고용된 지 2년이 지나더라도 무기계약직으로조차 전환될 수 없기 때문에 매번 계약갱신 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이러한 고용불안으로 인해 이들은 입주민들의 모욕적인 언행에 반박하기 어렵고, 산업재해를 당했을 때도 자신의 돈으로 치료비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라는 노동법마저 일하는 노인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노인노동자들과의 상담내용 대부분은 단순한 법 위반과 노인노동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과 인격모독이다. 근로계약서를 아예 작성하지 않거나, 최저임금에 미달되는 급여를 받아 왔거나, 회사의 산재은폐로 인해 산재신청을 못하는 경우이거나, 부당하게 해고되는 경우다.

기본적인 노동권을 침해당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권리구제를 위해 고용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하거나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는 노인노동자는 극소수다. 노동법의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형편없는 일자리라 해도 이마저도 잃게 되면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권리구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일하는 노인을 위해 정부 차원의 선행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더불어 기본적인 노동법 지식이 부족한 노인들을 위해 매우 쉽고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노동법 교육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노인일자리 창출’에만 열중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느라 노인노동자들을 마음껏 비정규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고, 일하는 노인들이 어떤 노동권 침해를 받고 있는지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

노인노동자들을 위한 노동권 보호 노력이 없는 지금의 노인일자리 창출사업은 결국 노인들에게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자리’ 또는 ‘어쩌면 산재 같은 불행으로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 제공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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