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찍퇴·강퇴를 막는 희망퇴직남용방지법을 제정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해 중장년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글로벌 제약회사가 새 정부 정책에 엇박자를 내고 있다.
한국민주제약노조 박스터지부(지부장 서동희)에 따르면 22일 현재 회사가 권고사직 대상자로 정한 7명 중 4명이 동의서를 썼다. 권고사직에 동의한 이들은 이달 말이면 근로계약이 끝난다. 회사는 동의서를 쓰지 않은 직원 3명에게 지속적으로 사직을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명 중 1명은 영업직원이고, 2명은 세일즈 어드민(영업지원직)이다. 박스터 4개 지역(대전·대구·광주·부산) 지방사무소에는 영업업무를 지원하는 내근직인 세일즈 어드민이 각각 1명씩 있다.
박스터는 세일즈 어드민 4명 중 2명을 권고사직 대상자로 정했다. 지부는 "회사가 권고사직 대상자들에게 '퇴사 후 파견직 2년, 계약직 2년'으로 다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특히 "2명이 안 나가면 지역 매출 순으로 내보내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일즈 어드민 4명 모두 여성이고, 이 중 1명은 임산부다.
최근에는 한 임원이 이들을 면담하면서 비공개를 전제로 "빨리 결정하면 (퇴직금으로) 2개월치를 더 주고, 4년(파견직 2년+계약직 2년) 동안 월급인상률에 3%씩 더해 주겠다"고 제안한 사실이 확인됐다.
박스터는 당초 '근속연수+9개월분'의 보상금을 제시했는데, 업체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액수다. 이달 말까지 권고사직 인력을 채우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완강하게 거부의사를 밝히던 세일즈 어드민에게만 추가 보상금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추가 보상 약속은 한 세일즈 어드민이 사직을 결정하면서 기업노조에 알려졌다. 기업노조가 이를 확인하자 해당 임원은 "노조에 알리지 않는 조건인데, 알렸으니 못 주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서동희 지부장은 "임신 중인 직원에게까지 사직을 강요하는 것도 모자라 노조에 알렸다는 이유로 약속한 추가 보상금을 못 주겠다고 모르쇠하는 못된 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 지부장은 "세일즈 어드민을 퇴사시킨 후 다시 파견직·계약직으로 채용해 같은 업무를 시키겠다는 것은 조직개편이 아니라 글로벌 본사가 할당한 정리해고 숫자 채우기라는 사실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라며 "한국의 노동관계법령을 무시한 채 일방적인 찍퇴·강퇴를 자행하는 글로벌 제약회사의 비도덕적 행위를 알리겠다"고 말했다.
지부는 18~19일 서울 종로구 주한 미대사관 앞과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조만간 성남 판교 최용범 대표 자택 앞에서 집회를 할 예정이다.
박스터코리아 관계자는 "권고사직 문제와 관련해서는 해당 임직원만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 공식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박스터에는 기업노조인 박스터코리아노조와 한국민주제약노조 박스터지부가 있다.